미리보기 · 시즌 2 · G12 · EP 4
흔들리는 땅의 사자
마태가 부활 아침을 기록할 때 그는 빈 무덤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들려준 것은 땅의 떨림이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태복음 28:2한 문장이지만 두 사건이 아니다. 천사가 내려오는 것과 땅이 흔들리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하늘이 내려올 때 땅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거룩이 임할 때 흙은 응답한다. 부활의 첫 표지는 빈 천 조각이나 굴려진 돌이 아니라, 그 둘을 만들어 낸 지진 그 자체였다.
우리는 흔히 지진을 재앙의 언어로 듣는다. 그러나 마태의 본문은 다른 결을 들려준다. 이 지진은 무너뜨리는 떨림이 아니라 열어 주는 떨림이었다. 봉인된 돌이 굴려졌고, 죽음의 자리가 들렸으며, 새 창조의 첫날이 흙 위에 발을 디뎠다.
성경은 거룩의 임재를 묘사할 때 자주 흙의 떨림을 곁들인다. 시편 기자는 노래한다.
"땅이여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시편 114:7땅은 인격이 아니지만, 거룩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다. 하박국은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방이 흩어지며"(하박국 3:6)라고 고백했고, 욥은 하나님이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면 그 기둥들이 흔들리느니라"(욥기 9:6)라고 토로했다. 자연 운용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례, 그것이 지진이다. 바람보다 깊고 물보다 무거운, 발 딛고 선 자리 자체의 응답이다.
그러므로 부활 아침의 지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천사 임재의 표지다. 발자국 없는 발자국이 흙에 남았고, 그 자국이 곧 떨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모든 지진을 천사의 강림으로 자동 해석하는 것은 본문이 허락하지 않는 비약이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들은 음성은 지진 가운데 있지 않았고(열왕기상 19:11 참조), 일상의 단층 활동을 곧장 거룩의 표지로 환원할 수도 없다. 또한 지진을 분노의 표시로만 읽는 것 역시 부활 아침을 잃어버리는 길이다. 마태의 떨림은 분노가 아니라 해방이었다.
땅이 떨릴 때 그것이 곧 천사의 발자국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천사가 임할 때 땅은 반드시 응답한다는 사실 — 이 방향은 결코 뒤집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묵상은 모든 흔들림을 표지로 부풀리는 데로 가지 않고, 거룩 앞에 서 있는 흙의 자세를 배우는 데로 향한다. 우리도 흙으로 지어진 존재(창세기 2:7)다. 거룩이 가까울 때, 우리의 어떤 부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 한 모퉁이가 까닭 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익숙한 자리가 낯설어지고, 단단했던 결정이 다시 떨릴 때가 있다. 그것이 무너짐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누군가 굴려야 할 돌 앞에 천사가 막 내려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활은 흔들림 없는 자리에서 오지 않았다. 부활은 흔들리는 자리에서 왔다.
이 권은 자연 요소 넷째 — 땅의 자리에 선다. 바람도, 불도, 물도 거룩 앞에 응답하지만, 발 아래 흙의 응답은 그 모든 것을 묶어 보여 준다. 다음 장은 부활보다 먼저 있었던 또 하나의 떨림 — 십자가 위의 지진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묵상 질문
1. 마태가 부활 아침을 "큰 지진"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나는 거룩의 임재를 어떤 신호로 알아채려 해 왔는가?
2. 내 삶에서 최근 "까닭 없이 흔들렸던" 자리는 어디인가? 그 흔들림이 무너짐의 신호가 아니라, 굴려져야 할 돌 앞에 선 신호일 가능성을 묵상해 보자.
3. 모든 흔들림을 표지로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거룩 앞에서 응답하는 흙의 자세로 살려면 오늘 내 일상에서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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