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1 · EP 9
스데반의 얼굴
스데반의 마지막 장면은 신약에서 가장 격렬하면서도 가장 고요한 한 순간입니다. 공회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사람들은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돌이 그의 살과 뼈를 부수기 직전, 누가는 우리에게 한 문장을 남깁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55-56이 문장은 죽음을 향해 끌려가는 한 사람의 외침이지만, 동시에 죽음 직전의 신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의 원형입니다. 돌은 아래에서 날아오는데, 그의 시선은 위로 향했습니다. 시야가 닫히기 직전, 시야가 열렸습니다. 죽음 직전의 위로는 결국 시야의 열림입니다.
주목할 단어는 "서신"입니다. 신약 다른 본문에서 인자는 한결같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본 인자는 일어나 계셨습니다. 좌정은 완성된 사역의 자세이고, 일어섬은 응답의 자세입니다. 한 종이 자기 이름 때문에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 보좌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디테일이 아니라 위로의 신학 전체의 기둥입니다. 죽음 직전의 신자는 혼자 쓰러지지 않습니다. 보좌가 그 죽음에 응답합니다. 환영하는 자세, 맞이하는 자세, 곧 일어선 자세입니다.
"오직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스데반의 시야가 열린 것은 그가 평생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닫히는 눈에 비치는 첫 빛은, 평생 안에 모셔온 그분의 얼굴이 마지막에 표면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본다는 약속은 종말의 어느 먼 날에만 성취되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자의 마지막 호흡 자리에서도 성취됩니다. 사도 바울 또한 이 시야의 전환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고린도전서 13:12에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시야가 꺼지는 사건이 아니라, 희미한 거울이 치워지는 사건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호흡이 그 세상의 첫 시선이 됩니다. 닫히는 눈꺼풀 너머로, 보좌에서 일어나신 분의 얼굴이 마중을 나옵니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에게 스데반과 똑같은 환상이 보장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스데반의 환상은 형식이 아니라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단 한 번의 창문입니다. 본질은 동일합니다 — 죽음의 순간, 보좌의 주인은 일어나신다는 것. 시편 기자는 이 본질을 이미 노래했습니다.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편 116:15). 귀중하다는 말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신다는 뜻이고, 무심하지 않으심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 바로 일어서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은 사후세계의 지형을 그리려는 책이 아닙니다. 죽음 직전, 시야가 열리는 그 한 점, 천사의 위로가 죽음을 넘어가는 다리가 되는 그 자리를 응시하려 합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돌에 맞기 직전, 공회 한가운데서 이미 천사의 얼굴로 빛났던 스데반의 얼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묵상 질문
1. 내가 평소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두는 일이, 마지막 호흡의 시야와 어떻게 이어진다고 느껴지는가?
2. 보좌에 앉으신 분이 아니라 일어서신 분의 자세를 떠올릴 때, 죽음에 대한 내 두려움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3.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자리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위로는 어떤 모양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