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1 · EP 8
히브리서 13장의 환대
한 끼의 식사가 영원이 되는 순간이 있다. 누가 누구인지 미처 묻지도 못한 채 식탁보를 펴고, 국그릇을 내려놓고, 의자를 당겨 권하는 그 평범한 동작 안에 하늘의 무게가 실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줄로 이 신비를 일깨운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2여기서 결정적인 단어는 부지중이다. 알고 들인 것이 아니다. 천사인 줄 알았다면 누구라도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환대는 정체를 알기 전에, 손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그 미지의 자리에서 이미 시작된 환대다. 거룩한 만남은 후에 밝혀지지만, 문은 그보다 먼저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가져다줄 사람인가. 그러나 부지중의 환대는 그 질문이 잠시 멈춘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원 조회보다 먼저 의자가 나가고, 평가보다 먼저 그릇이 채워지는 자리. 그 자리는 신비를 사냥하는 자리가 아니다. 모든 손님을 천사일까 의심하며 들이는 호기심은 오히려 일상의 본질을 지운다. 부지중은 모름의 신실함이지, 신비의 기대가 아니다.
"누가 의인이뇨 곧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편 15:2-3시인의 의인은 이웃을 가려 받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진실을 품고, 입에 평화를 두고, 곁에 온 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부지중 환대의 토대는 이 단순한 의로움이다. 누구일지 모르는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에 문은 자연스럽게 열린다.
이 장이 시작되는 권의 시각 언어는 식탁이다. 화려한 잔칫상이 아니라 평범한 한 끼. 김이 오르는 국 한 그릇, 식어 가는 밥, 마주 앉은 의자 하나. 그 일상에 영원의 손님이 앉을 수 있다는 가능성. 환대의 이 신비는 거래가 아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셈법이 들어오는 순간 식탁은 식탁이 아니게 된다. 부지중이라는 말이 보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보답을 셀 수 없는 자리에서만 환대는 환대로 남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오래 참는 사랑, 온유한 사랑은 정체를 따지지 않는 환대의 다른 이름이다. 모르는 이에게 자랑할 일이 없고, 모르는 이에게 교만할 까닭도 없다. 부지중은 우리를 가장 낮은 자리, 가장 단순한 자리로 데려간다.
이 권의 다른 장들은 이 신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따라간다. 롯의 저녁 문 앞, 기드온의 떡과 고깃국, 고넬료의 환상, 그리고 마지막 심판대에서 다시 들려올 한 문장.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가리키는 자리는 결국 오늘 우리의 문 앞이다. 오늘 내 식탁에 앉은 그 낯선 사람,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그 이웃, 한 번도 보답할 수 없는 그 행인.
부지중의 환대는 평범한 식탁이 영원의 만남이 되는 자리다. 손님이 누구인지 모른 채 여는 문이 거룩한 문이 된다.
명시적인 환대가 이미 손님의 무게를 알아본 환대라면, 부지중의 환대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행하는 더 깊은 자리의 환대다. 둘은 한 쌍이다. 이 권은 후자의 자리에 서서 묻는다. 알아야만 친절할 것인가, 아니면 알지 못한 채로도 친절할 것인가. 천국은 후자의 자리에서 자주 자란다.
묵상 질문
1. 나는 손님의 정체를 알기 전에 먼저 문을 여는가, 아니면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의자를 권하는가?
2.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푼 가장 최근의 작은 친절을 떠올려 보라. 그 자리에 누가 함께 앉아 있었다고 느끼는가?
3. 내 평범한 식탁이 영원의 만남이 되려면, 오늘 어떤 마음과 어떤 자리 하나를 더 비워 두어야 하겠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