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7 · EP 1
다스리라의 참 의미
인류의 첫 음성은 신음이나 외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름이었다. 흙으로 빚어진 존재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이미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원의 주인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자에게 한 가지 사명을 맡기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이 한 구절은 오랫동안 오해의 자리에 놓여 왔다.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단어는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면허처럼 읽혔다. 그러나 본문의 무게중심은 권력이 아니라 위임에 있다. 정원의 주인은 따로 있고, 인간은 그 정원을 맡은 첫 정원사로 세움 받았을 뿐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두 단어를 사용한다. 카바쉬는 땅을 일구어 길들이는 노동을, 라다는 무리를 인도하는 통치를 의미한다. 둘 다 분명히 힘의 어휘다. 그러나 성경은 이 힘의 정체를 곧 다른 자리에서 다시 정의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세기 2:15여기서 "경작하며 지키게"라는 두 동사는 본래 제사장이 성소에서 수행하던 임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첫 정원사의 일은 농부의 노동인 동시에 제사장의 섬김이었다. 다스림이란 결국 무릎 꿇은 자의 손길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다. 청지기는 맡은 자다.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리한 활용이 아니라 충성된 보존이다. 사도 바울은 그 원리를 분명히 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2땅이 신음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원의 고갈로만 셈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맡김의 배반으로 읽는다.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24:1). 정원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소유였던 적이 없다.
오늘 우리의 자리는 거대한 결정권의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베란다의 화분 하나, 음식물 쓰레기를 다루는 손길, 길고양이의 물그릇 하나가 첫 정원사의 일이다. 작은 자리에서 작은 손길로 맡은 것을 지킬 때, 우리는 비로소 형상으로 회복된다. 예언자 미가의 음성이 여기에 이른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다스림은 위에서 누르는 손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 흙을 만지는 손이다. 첫 정원사는 왕관 대신 호미를 들었다.
묵상 질문
1. 나는 "다스리라"는 말씀을 권리로 읽어 왔는가, 책임으로 읽어 왔는가?
2. 내가 매일 마주하는 작은 정원(가정·일터·이웃·자연) 중에서, 지금 가장 소홀히 맡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3. 청지기의 손길을 회복하기 위해 이번 한 주 내가 내려놓아야 할 '주인 행세' 하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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