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8
우리 안에 하나님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신앙의 모든 무게를 한 문장에 모아 놓는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1). 이 말씀은 단지 부활을 증언하지 않는다. 부활을 일으키신 그 능력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가리킨다. 무덤을 여신 그 영이 지금 내 안에 거하신다.
구약의 임재는 늘 바깥에 있었다. 모세가 만난 불은 떨기나무에 붙어 있었고, 백성이 따라간 영광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모양을 입고 진영 위에 머물렀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조차 임재는 지성소라는 한 칸에 갇혀 있었다. 거룩하신 분은 가까이 계셨지만, 결코 사람의 가슴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으셨다. 사람은 휘장 밖에 서서 향연이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 임재의 좌표가 옮겨졌다.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고, 거룩한 처소는 손으로 지은 건물에서 사람의 몸으로 이동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 이것이 새 언약의 가장 깊은 실체다. 율법은 돌판에 새겨졌으나, 새 언약은 마음 판에 새겨진다. 예언자 에스겔이 미리 보았던 그 약속이 부활의 영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 36:26).
그래서 신자는 걸어 다니는 성소다. 한 자리에 못 박힌 건물이 아니라, 출근길에도, 식탁에도, 병상에도, 잠든 밤에도 함께 옮겨가는 거룩한 처소다. 이 신학적 무게가 사라지면 신앙은 다시 외부 의식으로 돌아간다. 특정한 장소에 가야만,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하나님이 가까워진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주의 진실은 정반대다. 그분은 이미 가장 가까운 자리에 와 계신다.
가장 먼 분이 가장 가까운 자리로 오셨다. 무덤을 흔드신 능력이 지금 내 호흡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임재는 한 번의 황홀한 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활의 영은 잠시 들렀다 떠나시는 손님이 아니라, 영원히 거하시기로 작정하신 거주자이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16). 감정이 메마른 새벽에도, 기도가 막힌 광야에도, 영광 가운데서도 그분은 떠나지 않으신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죽을 몸까지 살리신다고 단언한다. 임재는 시한부가 아니라 부활의 보증이다.
오늘의 적용은 분명하다. 우선 장소의 우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거룩한 분위기가 아니라 거룩한 동거자가 임재의 근거다. 다음으로 몸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활의 영이 머무시는 처소이기에, 식사·휴식·노동·관계의 모든 자리가 영적 사건의 무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리에 부활의 보증을 끌어와야 한다. 지금 내 안에 계신 그 영이, 마지막 날 내 무덤도 여실 그 영이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9오늘 하루, 어떤 자리에서도 잊지 말 일이다. 무덤을 여신 그분이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신다.
묵상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여전히 특정 장소나 분위기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 이미 거하시는 부활의 영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2. 부활의 영이 거하시는 처소로서의 내 몸과 일상을, 나는 지금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3.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약속이 오늘 내가 마주한 두려움과 무력함에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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