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3 · EP 10
전수와 이음
바울이 옥에 갇혀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신학도 정책도 아니었다. 한 청년의 얼굴, 그리고 그 청년 뒤에 서 있는 두 여인의 그림자였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5바울은 디모데의 학식이나 재능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가 본 것은 한 가닥의 불씨, 외할머니 로이스의 무릎에서 시작되어 어머니 유니게의 손을 거쳐 손자의 가슴에 옮겨 붙은 거짓 없는 믿음이다. 이 권 전체가 따라 걷는 길은 바로 이 한 절에서 시작된다. 관계가 시간을 넘어 흐를 때, 그것이 무엇을 타고 흐르는가.
유산은 추상이 아니다. 로이스가 유니게에게,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건넨 것은 "신앙 일반"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무엇이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게 한 그 구체적 행위 말이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주목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어머니가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는지를 짚는다. 즉 읽힌 말씀, 외워진 구절, 반복된 기도다. 신명기는 이 일상의 통로를 못 박아 두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7). 거실의 식탁, 잠자리 머리맡, 등굣길의 짧은 한마디 — 유산은 이런 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모든 가정이 같은 풍경을 이루지는 못한다. 유니게의 남편은 헬라인이었고(사도행전 16:1), 디모데의 가정은 신앙적으로 반쪽이었다. 그럼에도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왜인가. 로이스가 단지 손자에게 신앙을 말해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 믿음을 살아 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노래한 그대로다.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78:3-4물려준 등잔불은, 받아 든 손에서 다시 켜질 때 비로소 이어진다. 로이스의 신앙이 유니게에게서 한 번, 유니게의 신앙이 디모데에게서 또 한 번 점화되었다. 잠언 기자가 말한 마땅히 행할 길의 가르침(잠언 22:6)이 이렇게 살아 움직였다.
적용은 거창하지 않다. 자녀와 함께 한 구절을 외우는 일, 식사 전 짧은 감사, 잠들기 전 한 줄 기도, 주일 아침의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 — 이 작은 의식들이 훗날 누군가의 "거짓 없는 믿음"의 원료가 된다. 신앙은 강의실에서 전수되지 않고 무릎 위에서 전수된다. 부모 사랑의 본질이나 멘토링의 구조, 공동체의 역할은 뒤의 장들이 따로 다룰 것이다. 이 장이 붙드는 것은 오직 하나, 일상의 자리에 박아 둔 신앙의 흔적이 세대를 가른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오늘 무심코 행하는 한 줄의 기도, 한 절의 암송, 한 번의 예배 출석은 — 50년 뒤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켜질 등잔의 기름이다.
묵상 질문
1. 내 안에 살아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누구의 무릎에서 옮겨 온 불씨인가? 그 사람이 내게 남긴 가장 구체적인 신앙의 자산 한 가지를 떠올려 적어 보자.
2. 로이스와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남긴 것은 "성경을 알게 한" 일상이었다. 내가 자녀나 후배에게 지금 물려주고 있는 일상의 신앙 의식은 무엇이며, 빠진 자리는 어디인가?
3. 받은 등잔불이 내 손에서 다시 켜졌다는 표지는 무엇인가? 단지 물려받기만 하고 점화되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정직하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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