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3 · EP 7
초대교회의 모델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예루살렘의 작은 다락방에서 시작된 모임을 누가는 이렇게 요약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2이 한 구절은 교회의 출생증명서다. 가르침과 교제, 떡과 기도—네 기둥이 하나의 지붕을 떠받친다. 어느 하나도 분리될 수 없고,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자라난 비밀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정교한 조직이 아니라, 바로 이 통합된 네 기둥에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누가가 "교제"를 단수가 아닌 공동의 행위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단순히 친목이 아니라 '함께 가진다'는 의미다. 내 것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 우리 것이 되는 자리. 한 사람의 사랑은 한 사람만큼의 사랑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그 사이에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셋이 모이면 또 다른 차원이, 열이 모이면 도시 하나를 흔드는 파장이 일어난다.
전도서 기자는 일찍이 이 진리를 알았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공동체는 개인의 산술적 합이 아니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거기서 발생하는 관계의 장(場)이 더해진다. 시편 기자도 같은 떨림을 노래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연합 자체가 선이며 아름다움이다.
왜 하필 '떡을 떼는' 행위가 교회의 표지가 되었을까. 식탁은 인간이 가장 무방비해지는 자리다. 갑옷을 벗고, 입을 벌리고, 같은 음식을 씹는다. 주님은 마지막 밤에 그 자리를 택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누가복음 22:19). 떡을 뗀다는 것은 그분의 부서짐을 우리 안으로 들이는 일이며, 동시에 내 곁의 사람을 식구(食口)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누가는 이어서 적는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사도행전 2:46). 성전의 예배와 집의 식탁이 분리되지 않았다. 거룩과 일상이 하나의 호흡으로 흘렀다.
우리의 교회는 종종 가르침만 남고 교제는 형식이 되며, 떡은 의식이 되고 기도는 행사가 된다. 네 기둥 중 하나만 무너져도 지붕은 기운다. 이번 주, 누군가를 식탁에 초대해 보라. 거창한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같은 그릇에서 함께 먹는 그 단순한 행위 속에 초대교회의 비밀이 다시 살아난다.
한 사람의 진실한 사랑은 위대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사랑이 한 식탁에 둘러앉을 때, 거기서 하늘의 차원이 열린다.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했다. "서로 기도하라 이는 너희가 나음을 받기 위함이라"(야고보서 5:16). 서로—이 두 글자가 공동체의 본질이다.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치유가 '서로' 안에서 일어난다.
묵상 질문
1. 가르침·교제·떡·기도, 네 기둥 중 내 신앙에서 가장 약해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약해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2. 최근 누군가와 '함께 먹은' 식탁이 있는가? 그 식탁에서 나는 코이노니아를 경험했는가, 아니면 형식적인 모임으로 끝났는가?
3. 한 사람의 사랑이 모여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고 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그 '차원의 열림'을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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