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1
표면을 넘어 깊은 곳으로
기도를 처음 배울 때, 우리는 대부분 말하는 법부터 배웠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드려야 하는지, 어떤 표현이 경건하게 들리는지를 먼저 익혔다. 그렇게 수십 년을 기도해왔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가슴 한켠에서 떠오른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혼자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더 긴 기도, 더 유창한 기도, 더 많은 기도가 아니라 —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첫 걸음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솔직히 들여다보면, 많은 기도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것을 아뢰고, 이유를 설명하고, 간절함을 증명하고, 응답이 오지 않으면 더 열심히 되풀이한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혹은 탄원서를 제출하듯 기도한다. 이런 기도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말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기도는 의무감에서 드려지는 기도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챙겨야 하는 숙제처럼, 밥 먹기 전에 눈 감아야 하는 절차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아니라 빠뜨렸을 때의 죄책감이 기도를 이끈다. 그것도 기도이기는 하지만, 얕은 물이다. 발만 적실 수 있는 깊이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편 27편 8절다윗은 응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다.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이것이 얕은 물과 깊은 물의 차이다. 얕은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향하고, 깊은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향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계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전환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도의 목적이 응답을 얻는 것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바뀔 때, 기도는 비로소 관계가 된다. 오래된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 꼭 할 말이 없어도, 침묵 속에서도 충만한 그 자리.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원하는 것을 구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의 핵심은 다음 구절에 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 안으로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장 깊은 기도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것이 얕은 기도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얕은 물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깊은 곳에 이를 수 없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저 오늘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기도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그 솔직함 위에 깊이가 자란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지금 내 기도가 얕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갈망을 품는 것. 오늘 단 5분이라도, 말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아 있어보는 것. 그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공간을 내어드리는 것. 깊은 기도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 여정은 완벽한 기도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알아가기 위한 것이다. 얕은 물에서 출발한 우리가, 한 걸음씩 더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깊이, 그분 안에 완전히 잠기는 깊이까지.
묵상 질문
1. 지금까지 내가 드려온 기도를 솔직하게 떠올려볼 때, 그 기도는 주로 무엇을 향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손(응답과 도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얼굴(그분 자신)입니까?
2. 최근 기도 중에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임재를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의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3. 오늘 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그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 가져가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