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HEAL · EP 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라"
고린도후서 12:9바울은 세 번이나 간구했다. 자신의 몸에 박힌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간절히, 반복하여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치유가 아니었다. 가시를 제거하는 대신, 가시 위에 은혜를 내려주셨다. 이것은 거절이 아니다. 치유보다 더 깊은 곳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다.
우리는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기도해도 낫지 않을 때, 믿음이 흔들린다. 혹시 내 믿음이 부족한 것인가. 혹시 숨겨진 죄가 있는 것인가. 이런 물음이 고통 위에 또 다른 고통을 쌓는다. 그러나 바울을 보라. 천국의 비밀까지 보았던 사람, 수많은 이적을 행했던 사도조차 자기 몸의 가시는 치유받지 못했다. 이것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이 치유 너머의 것을 주시려는 뜻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편 34:18). 치유되지 않은 자리, 바로 그 상한 마음 가까이 하나님이 계신다. 아픔이 사라져야 은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아픔 한가운데서 이미 은혜가 흐르고 있다.
가시가 박힌 채로 피는 꽃이 있다. 상처를 안고도 향기를 내는 존재가 있다. 바울의 삶이 그러했다. 가시는 여전히 그의 살을 찔렀지만, 그 약함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치유는 반드시 고통의 제거를 뜻하지 않는다. 때로 치유는 고통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을 얻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전한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이사야 43:2). 물을 마르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하겠다고 하셨다. 고난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 동행하시는 것, 이것이 은혜의 참된 얼굴이다.
치유의 때는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가시가 남아 있는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의 카이로스 안에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바로 이 순간이다. 고통이 끝나야 은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 이 순간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열려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가시의 시간이 헛되지 않다. 그 시간 안에서 인내가 자라고, 연단이 일어나고, 소망이 익어간다. 치유되지 않는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더 깊은 일을 이루시는 거룩한 시간이다.
오늘 당신의 가시는 무엇인가. 세 번이 아니라 삼백 번을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한 마디가 치유 이상의 치유다. 가시를 안고도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는 약함 속에서 그분의 충만함을 입는다.
묵상 질문
1. 내 삶에서 치유를 구했지만 아직 응답받지 못한 '가시'는 무엇인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2. 고통이 사라지는 것만이 치유라고 생각해왔다면, 고통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
3. 지금 이 순간을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받아들인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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