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2 · EP 9
종말의 거두심
가을 들판에 서 본 적이 있는가. 봄에 뿌린 씨가 여름의 비와 햇살을 통과해 황금빛으로 익어갈 때, 들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가 된다. 그러나 들판은 그 황금빛에서 멈추지 않는다. 익음의 다음 단계는 반드시 거두심이다. 마태복음의 비유는 이 자연의 사이클 위에 천상의 손을 겹쳐 놓는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태복음 13:39주목해야 할 것은 비유 안의 사이클이다. 씨를 뿌리는 자, 자라게 하시는 분, 그리고 거두는 자. 이 흐름의 마지막 자리에 천사가 서 있다. 자연의 운용은 천상의 손과 무관한 독립된 기계가 아니다. 봄과 가을, 파종과 추수는 보이지 않는 사역의 외피였다. 이 권에서 우리가 응시할 자리는 바로 거기—자연 사이클이 그 정점에 이르러 천사들의 손에 맡겨지는 그 자리다.
구약의 농경 율법은 거두는 손에 대해 자주 말한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19). 인간의 추수에도 이미 그늘이 있었다. 거두는 손은 단순한 소유의 손이 아니라 분별의 손, 남기는 손, 옮기는 손이었다. 하물며 종말의 들판에서 일하실 손은 어떠하겠는가.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자연의 사이클 안에 이미 신학이 새겨져 있다. 뿌림과 거둠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운율이다. 그리고 그 운율의 마지막 박자를 치는 분이 누구신가—주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농부의 들판이 결국 천사의 들판이 된다는 사실은 묘하게 위로가 된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들판도 결국 그분의 사역자들의 손에 넘겨진다.
요엘서는 그 정점의 음향을 미리 들려준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요엘 3:13). 들판의 익음은 신호다. 자연이 스스로 멈추거나 흩어지지 않고, 익음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손에게로 옮겨진다. 이것이 G12 「자연을 다스리는 손길」 사이클의 마지막 결론이다. 보호하시던 손길이 거두시는 손길로 자리를 바꾼다. 같은 손이다. 다만 사역의 단계가 옮겨졌을 뿐이다.
자연은 종말로 향하는 흐름의 외피이며, 그 흐름의 마지막 박자에 천사의 낫이 들린다. 봄의 씨는 결국 가을의 손을 만난다.
실생활의 자리에서 이 묵상은 무엇이 되는가. 우리는 흔히 자연의 흐름을 무심한 배경으로 여기지만, 들녘의 익음과 시듦, 계절의 회전, 시간의 농익음 모두가 거두심을 향한 운율이다. 사도 바울이 "심은 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했을 때, 그는 마술적 결정론이 아니라 이 자연의 신학 안에서 말했다. 우리의 하루도 익어간다. 그리고 익은 것은 반드시 거두어지는 자리로 옮겨간다. 다만 그 거두는 손이 천사의 손이라는 사실—그 사실 하나가 우리의 하루를 두렵게 하고 또 안온하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그 천사들에게 내려진 추수의 명령을 따라가 보자. "추수 때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이라는 음성이 어떻게 들녘 위에 떨어지는지를.
묵상 질문
1. 내가 무심코 바라보는 계절의 회전 안에서, 천사의 손을 의식해본 적이 있는가. 자연 사이클의 마지막 자리에 어떤 손이 서 있다고 믿고 있는가.
2. 내 인생의 어떤 영역이 지금 "익어가는" 단계에 있는가. 그 익음이 거두심으로 옮겨갈 때, 나는 두려운가 평안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보호하시던 손길이 거두시는 손길로 자리를 바꾸어도 같은 손이라는 고백이, 오늘 나의 기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