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2 · EP 3
강과 샘의 권세
요한이 들은 음성은 바다의 우레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한 천사의 단정한 증언이었다. 강과 샘이 모두 피로 변하는 그 무서운 광경 한가운데서, 그는 하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요한계시록 16:5주목할 것은 이 천사의 직책이다. 그는 단지 사자(使者)가 아니라 물을 맡은 자다. 강의 흐름과 샘의 솟음, 그 자연의 운용이 그의 손에 위탁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손이 피로 물든 강 위에서 한 일은, 흐름을 멈추는 것도 아니고 항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의로움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연 현상과 도덕 질서를 분리한다. 강이 마르는 것은 기상의 문제요, 정의는 법정의 문제라 여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 둘을 한 천사의 손 안에 묶는다. 강의 권세를 가진 자가 곧 심판의 정당함을 증언하는 자다. 자연 운용이 곧 정의의 자리라는 것이다.
이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시편 기자는 일찍이 노래했다.
"의와 공평이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편 89:14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라면, 그 보좌 아래 흐르는 강물 또한 그 의의 통로일 수밖에 없다. 물의 천사는 자기가 맡은 자연이 결국 무엇을 떠받치고 있는지 안다. 그래서 자기 영역이 피로 물들었을 때, 그는 슬퍼하기보다 먼저 의로우시도다라고 고백했다.
물은 본래 두 얼굴이다. 광야의 반석에서 솟아 백성을 살리던 그 물이, 또한 홍수가 되어 한 시대를 덮기도 했다. 아모스의 외침은 그 양면을 한 호흡에 담아낸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물처럼 흐르는 정의 — 이것이 물의 천사가 자기 영역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그는 생명을 운반하는 동시에, 그 생명이 외면당한 자리에는 심판을 운반한다. 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강가에 선 신자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자연의 호혜는 거룩한 손길의 위탁이라는 것. 둘째, 그 호혜가 거두어지는 날에도 하늘은 여전히 의롭다는 것. 이사야의 음성이 그 평형을 잡아준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사야 43:1-2강의 흐름을 손에 든 자가 의로움을 증언한다. 자연 운용이 곧 정의의 자리다.
오늘 우리 삶의 강물이 맑든 흐리든, 물의 천사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흐름을 통제하려는 손이 아니라, 그 흐름 위에 새겨진 의로움을 함께 고백하는 입이다.
묵상 질문
1. 내가 누리는 일상의 물 — 식수, 비, 강 — 을 한 천사의 위탁으로 본 적이 있는가? 그 시선이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2. 내 삶의 강이 마르거나 흐려졌을 때, 나는 항의하는 입이었는가, 의로움을 증언하는 입이었는가?
3. 자연 운용과 정의가 한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은, 환경·사회·내면의 어느 자리에서 내게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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