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1 · EP 5
베드로의 구출
베드로는 두 군인 사이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헤롯 앞에 끌려 나갈 예정이었고, 사슬은 그의 양손을 군인의 손에 묶고 있었습니다. 옥문 앞에는 또 다른 파수꾼들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인간이 닫을 수 있는 모든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사도행전 12:7저는 이 장면 앞에서 한 동작에 멈춰 섭니다. 옆구리를 친다는 동작. 그것은 깨우는 손짓 중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합니다. 어머니가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울 때 쓰는 손길, 옆자리 친구가 졸고 있는 동료를 슬쩍 건드리는 손길. 천하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리는 사건이 이렇게 가벼운 손길로 시작됩니다. 광채는 빛났지만 손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베드로 자신의 반응입니다. 그는 사자를 따라 첫째 파수와 둘째 파수를 지나고, 성으로 통하는 쇠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을 보면서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따라 나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사도행전 12:9발은 분명히 옥에서 거리로 걸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아직 꿈과 생시 사이를 떠다닙니다. 구출의 형식이 너무 가벼워서, 당사자조차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떠난 뒤에야,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친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립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겠노라"(사도행전 12:11)고 고백하는 그 순간, 베드로는 이미 옥 밖에 서 있었습니다.
구출은 인식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그리고 인식이 도착하기 전에도 자리는 이미 옮겨져 있습니다. 꿈처럼 가벼웠던 그 손길이, 거리만큼은 정확히 옮겨 놓은 것입니다.
본문 한 절 앞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5같은 밤, 한쪽에서는 마리아의 집 다락방에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옥 안에서 한 사람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기도는 옥문 안쪽으로 손을 뻗을 수 없었지만, 그 기도와 동시에 천사의 손이 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손은 동시에 움직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한 가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같은 12장의 첫머리에서 야고보는 칼에 죽었습니다(사도행전 12:2). 같은 시간 같은 박해 아래 한 사람은 풀려나고 한 사람은 떠났습니다. 구출이 기도의 강도에 따라 자동으로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시편 146:7). 이 자유는 약속이지, 형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를 끌어내는 주문을 외우는 자가 아니라, 자유를 주실 분 앞에 무릎 꿇는 자입니다.
가장 가벼운 손길이 가장 무거운 자리를 옮긴다. 손길의 가벼움이 사실의 무게를 줄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 닫혀 있는 옥문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일 수도, 오래된 습관일 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문을 부수기 위해 천둥소리가 필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성경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옆구리를 친 한 번의 손, 그 한 번의 가벼운 접촉으로 사슬은 풀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손이 닿을 자리에 잠들어 있는 일입니다. 깨우심을 기다리며 — 기도하는 교회와 함께.
묵상 질문
1. 내가 지금 갇혀 있다고 느끼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형식의 구출을 상상해 왔습니까 — 천둥소리입니까, 옆구리를 친 한 번의 손입니까?
2. 베드로처럼 이미 구출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환상인 줄로 여기고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이 내게도 있었습니까. 무엇이 그 깨달음을 늦추었습니까?
3. 옥 밖에서 기도하던 교회와 옥 안에서 잠들어 있던 베드로, 두 자리 모두가 구출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어느 자리에 부름받고 있습니까?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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