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0 · EP 10
천사들이 가져오는 최종 심판
예수께서는 비유의 결론을 직접 풀어 주십니다. 가라지의 비유를 듣고 어리둥절해하는 제자들 앞에서, 그분은 마지막 장면의 손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거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태복음 13:41이 한 구절 안에 마지막 청산의 전모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보내는 분은 인자, 보내심을 받는 자는 천사들, 거두어지는 것은 거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 마지막은 갑작스러운 폭발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해진 사역이며, 위임받은 손이 수행하는 질서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종말을 떠올릴 때 자주 혼돈의 이미지를 끌어옵니다. 천재지변, 무너지는 도시, 불타는 하늘. 그러나 본문이 보여 주는 그림은 다릅니다. 잘 익은 들판에 들어선 추수꾼들, 손에 들린 낫, 거두어 단으로 묶는 정연한 손길. 마지막은 무질서가 아니라 가장 깊은 질서의 완성입니다.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인자가 보내시는 천사들은 막연한 천사가 아니라 '그 천사들'입니다. 인자께 속한, 인자의 권위 아래 있는, 인자의 명령을 받는 사역자들입니다. 천사들은 스스로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보내심이 있어야 움직이고, 위임이 있어야 손을 댑니다.
이 구분은 결정적입니다. 천사를 심판의 주체로 격상시키는 모든 시도, 혹은 사람이 자기 의분을 천사의 권위로 포장해 휘두르는 모든 시도는 본문이 막아 세웁니다. 시편 기자는 천사의 자리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능력이 있어 그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그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20천사는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능력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매여 있을 때 비로소 거룩한 능력이 됩니다. 이 위임의 질서는 히브리서가 한 번 더 못박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히브리서 1:14마지막 청산을 그리는 그림은 추수입니다. 추수꾼의 낫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거두는 일과 나누는 일. 들판에서 익은 밀과 가라지를 가르는 손이 곧 단으로 묶고 풀무로 보내는 손입니다. 거두어 내는 동작 안에 이미 분별이 들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종말의 임재를 미리 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스가랴 14:5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임할 그날, 그 손은 결코 우리의 손이 아닙니다. 우리는 들판 안에 서 있는 자이지 들판 위를 가르는 자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구분을 잊지 말라고 권합니다.
"주께서는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고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마지막이 정해진 사역이라는 사실은 두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위로입니다. 거치는 것과 불법은 영원히 활보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손이, 정해진 때에, 정해진 들판에서 그것을 거두어 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절제입니다. 우리는 그 손이 아니므로 오늘 들판 안에서 인내하며 익어 갈 뿐입니다. 이 권의 종착, 그리고 다음 권에서 마주할 새 창조의 새벽은 바로 이 정해진 사역 너머에서 열립니다.
마지막은 사고가 아니다. 사역이다. 그리고 그 사역의 손은 보내심을 받은 손이다.
묵상 질문
1. 나는 마지막 청산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떠올리는가, '정해진 사역'으로 받아들이는가? 그 차이가 오늘의 불안과 평안에 어떤 결을 만드는가?
2. '그 천사들'이라는 표현은 모든 거룩한 능력이 위임의 질서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내가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거두어 내려 했던 자리는 없었는가?
3. 들판 위의 손이 아니라 들판 안의 밀로 익어 가는 자리에 머무는 것은 내게 어떤 인내와 어떤 소망을 요구하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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