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9
이사야 6장의 응답
보좌의 음성이 들립니다. 천사들이 거룩을 외치는 그 자리에서, 한 음성이 떨어집니다. 묻는 음성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이 한 절 안에 응답의 형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묻는 분의 음성과, 손드는 자의 응답.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사야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보통의 응답은 임무를 들은 다음에 옵니다. 어디로? 얼마 동안? 보상은? 위험은? 계산이 먼저고 응답이 나중입니다. 그런데 보좌의 응답은 거꾸로입니다. 응답이 먼저고, 임무는 그 뒤에 들립니다.
히브리어로는 단 한 마디입니다. 히네니(הִנֵּנִי)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한 단어 안에 자기 전체를 위임하는 형식이 담겨 있습니다.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발이 먼저 일어서는 자세입니다.
임무를 알아야 응답한다면, 그것은 자원이 아니라 계약이다. 자원은 임무가 무엇이든 먼저 가겠다는 자세다.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이 단어를 썼습니다. "아브라함아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세기 22:1). 그 다음에 비로소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라는 명령은, 히네니 다음에 옵니다. 모세도 떨기나무 앞에서 같은 응답을 했고(출애굽기 3:4), 어린 사무엘은 잠 속에서도 같은 단어로 일어났습니다.
이 응답은 본래 보좌 앞 시종들의 응답입니다. 묻는 음성에 대한 천사적 응답 — 그것이 이사야의 모델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인간이지만, 그 순간 그는 보좌 앞에 선 자처럼 응답했습니다.
훗날 한 여인도 같은 자세로 섰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형식으로 오셨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보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브리서 10:7). 모두 한 흐름입니다. 보내심에 대한 응답은 늘 이 한 모양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응답하기 전에 너무 많이 묻습니다. 어느 자리인지, 누구와 일하는지, 결과는 어떨지. 계산이 마쳐져야 손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보좌의 음성은 계산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묻는 그 순간 응답이 있는지를 봅니다.
자원의 자리란 무모함이 아닙니다. 분별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임무 내용보다 보내시는 분이 먼저 무거운 자세입니다. 누가 부르시는지를 알면, 무엇을 시키시는지는 그 다음 문제가 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 6:1오늘 당신의 보좌 앞 자리는 어디입니까. 식탁 앞, 책상 앞, 병상 앞, 누군가의 곁. 그 모든 자리에서 묻는 음성이 있습니다. "누가 갈꼬." 발이 먼저 일어서는 응답 — 그것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응답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따져 묻는가. 그 계산이 응답 자체를 막은 적이 있는가.
2. 히네니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 이 한 마디를 드릴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3. 임무 내용보다 부르시는 분이 먼저 무거워지려면, 내 안에서 무엇이 먼저 가벼워져야 하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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