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6
쉐키나의 호위자
광야의 한복판, 천막 한 채가 모래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안쪽, 휘장 너머 가장 깊은 곳에 한 궤가 놓이고, 그 위에 순금으로 두드려 만든 두 그룹이 날개를 펼친 채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좁은 공간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주목할 것은 "거기서"라는 말입니다. 하늘 어디서나가 아니라, 떠도는 어떤 영적 분위기 속에서가 아니라,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라는 구체적 좌표입니다. 임재의 영광은 모호한 안개가 아닙니다. 만져지지는 않으나 자리는 분명한, 가시적이고 위치를 가진 만남입니다.
히브리어 쉐키나는 "거하다"라는 동사 샤칸에서 나왔습니다. 머무르신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 머무름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표지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나, 그분이 거하시는 자리는 보이게 하셨습니다. 구름 한 자락, 빛 한 줄기, 멈추지 않는 불꽃 — 보이지 않는 빛을 가리키는 보이는 표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을 내려올 때 그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그가 본 영광의 잔향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 증거의 두 판이 모세의 손에 있고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출애굽기 34:29사람도 그 자리에 가까이 가면 빛을 머금습니다. 영광은 추상이 아닙니다.
속죄소 위에는 늘 두 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광 자체가 아니라, 그 영광을 둘러싼 호위입니다. 이사야는 보좌 곁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치는 무리를 보았고, 그들의 노래로 성전 문지방의 터가 흔들렸다고 말합니다.
"이 활활 타오르는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 6:4다윗도 비슷한 자리를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시편 80:1). 두 그룹 사이 — 그 좌표는 광야의 천막에서도,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시인의 노래에서도 한결같습니다.
임재의 영광은 가운데 있고, 호위는 그 둘레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빛을 둘러싼 보이는 무리 — 그것이 만남의 자리의 모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는 어디일까요. 휘장은 이미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고, 만남의 자리는 한 인격 안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좌표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펼쳐 든 성경, 떡과 잔이 놓인 식탁, 무릎이 닿은 골방의 마룻바닥 — 거기 우리는 가서 만납니다. 막연한 어딘가가 아니라 "거기서"입니다.
분주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고 그 좌표를 다시 확인하십시오. 만남은 우리가 만들지 않습니다. 그분이 정해 두신 자리로 우리가 나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거하시는 영광이 오늘도 머무십니다.
묵상 질문
1. 내 일상에서 "거기서 만나주신다"고 고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좌표가 있는가? 그 자리가 흐려져 있다면 무엇이 그것을 지웠는가?
2. 쉐키나 — 보이는 표지로 거하시는 영광 — 을 추상적인 분위기가 아닌 실재로 받아들이는 데에 내 마음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3. 보이지 않는 빛을 둘러싼 보이는 무리처럼, 내 삶에서 그분의 임재를 호위하고 둘러싸는 자리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