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5
천군의 통수권자
천사 군대를 누가 지휘하는가. 별들은 누구의 한 마디에 정렬하는가. 시편 기자는 한 호칭으로 그 모든 질문을 단번에 봉합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46:7두려움이 휘몰아치던 시편 46편의 절정에서 시인이 붙든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였다. 산이 흔들리고 물결이 솟구쳐도 그는 떨지 않았다. 천군의 통수권자가 멀리 있지 않고 자기 백성과 같은 자리에 서 계셨기 때문이다. 호위하는 천사 한 무리가 아니라, 그 호위를 지휘하는 분이 친히 함께하셨다.
히브리어 쩨바옷은 단순히 군대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복수형이다. 군대들. 한 부대가 아니라 부대의 무리, 한 별이 아니라 별들의 무리, 한 천사가 아니라 천사들의 무리 전체를 한 호흡에 묶는 호칭이다. 이사야의 증언이 이 호명의 폭을 보여 준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이사야 40:26별들조차 그분의 호명 아래 정렬된다. 천군의 통수가 우주의 통수와 분리되지 않는다. 곧 만군의 여호와는 군사적 사령관이 아니라 만물의 주이심을 드러내는 호칭이다. 별들 위에 자기 길을 그리시고, 그 한 마디에 천군이 일제히 정렬한다. 통수권의 무게는 칼이 아니라 말씀에 실려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는 본부에 앉아 명령만 내리는 분이 아니다. 시편 기자가 이 호칭을 부르는 순간, 곧바로 따라붙는 말이 "우리와 함께"이다. 통수권자의 좌표가 천상의 본부가 아니라 떠는 백성의 곁이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가 외친 이름도 같았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 17:45다윗의 손에는 물맷돌 다섯 개뿐이었지만, 그의 등 뒤에는 별과 천군을 한 마디로 움직이시는 분이 함께 서 계셨다. 통수는 무력의 과시가 아니라 임재의 보증이다. 스가랴 선지자도 같은 결로 증언한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스가랴 4:6). 만군의 통수는 군마의 수효로 일하시지 않는다. 영으로, 말씀으로, 함께하심으로 일하신다.
천군의 통수권자가 자기 백성의 피난처가 되시는 자리 — 그곳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호칭이 도달하는 종착점이다.
오늘 우리의 자리는 어떠한가. 흔들리는 시대, 솟구치는 물결, 산이 바다 가운데로 옮겨지는 듯한 소식들. 그 한복판에서 우리가 부를 이름은 멀리 있는 사령관이 아니다. 별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는 그분이 동시에 내 이름을 알고 곁에 서 계신다. 통수의 한 마디가 우주를 정렬시키는 그 입술이 오늘 나의 피난처를 향해 열려 있다.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묵상 질문
1. 내가 두려움 앞에서 부르는 하나님의 호칭은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의 폭을 내 기도에 어떻게 들여놓을 수 있을까.
2. 별과 천군을 한 마디로 움직이시는 분이 동시에 "우리와 함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내 일상에서 어떤 결단을 의미하는가.
3. 다윗처럼 작은 물맷돌을 들고 거인 앞에 설 때, 나는 어떤 이름의 등을 의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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