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2
서서 명을 기다리는 자
다니엘이 본 환상의 한 장면은 천사론의 무게중심이다. 거기에는 능력의 폭발도, 전쟁의 함성도 아닌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 속에서 셀 수 없는 존재들이 한 보좌를 향해 서 있다.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시위하는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다니엘 7:10천천(千千)이요 만만(萬萬)이라.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무기도, 날개의 크기도, 빛의 강도도 말하지 않는다. 말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다. 그들이 어디를 향해 서 있는가. 보좌 앞이다. 천사의 정체는 그가 가진 능력의 목록이 아니라, 그가 선 자리와 향한 얼굴로 규정된다.
히브리어 샤라트(שָׁרַת)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왕의 면전에서 행하는 시종의 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헬라어 라이투르고스(λειτουργός)도 마찬가지로 공적 자리에서의 봉사를 뜻한다. 이 단어들이 천사에게 붙여질 때, 거기에는 한 가지 본질이 새겨진다. 천사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라 명을 기다리는 자다.
이 책 시리즈가 일찍이 다룬 어둠의 위계를 떠올려 보자. 거기에도 천천 만만의 질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위계의 시선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다. 자기 영광, 자기 이름, 자기 보좌. 같은 피조의 영적 존재가 같은 구조의 위계를 이루면서도 정반대의 방향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떨게 한다.
다니엘이 본 보좌 앞의 위계는 거울상이다. 자기를 향한 위계가 아니라, 보좌를 향한 위계. 같은 구조, 반대 방향. 천사의 거룩함은 그가 빛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빛이 자기에게서 멈추지 않고 보좌로 흘러간다는 사실에 있다.
"오직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유다서 1:6자기 처소를 지킨다는 것 — 그것이 시종의 첫 미덕이다. 시편 기자도 이 같은 자세를 노래했다.
"여호와의 사자들이여 능력이 있어 그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자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20여기서도 능력은 부차적이다. 능력은 말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있는 것이지, 능력을 휘두르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다. 순서가 분명하다. 듣고, 그 다음 행한다.
고대 근동의 궁정을 상상해 보라. 왕의 옥좌 곁에는 늘 시종이 서 있었다. 그의 일은 분주함이 아니었다. 그의 일은 깨어 있는 것, 그리고 부르심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한 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 자세 자체가 그의 일이다.
예수께서도 이 위치를 말씀하셨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항상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10'항상 뵈옵느니라' — 이 한 마디가 천사의 본질을 다 담는다. 천사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보고 있느냐로 규정된다. 우리 신앙도 그러하지 않은가. 코람 데오, 하나님 얼굴 앞이라는 자리. 거기 서는 일이 곧 본질이다.
오늘 우리는 분주함을 경건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다니엘이 본 천천 만만은 일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서 있었다. 보좌를 향해. 명을 기다리며.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 하루 전체가 이미 시종의 하루가 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미가야가 본 또 다른 시종 환상으로 들어가, 이 자세가 어떻게 회의의 자리에 모이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묵상 질문
1. 나는 오늘 무엇을 하느냐로 나를 규정하는가, 누구를 향해 서 있느냐로 나를 규정하는가?
2. 천천 만만의 천사가 능력을 휘두르지 않고 보좌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분주함을 경건으로 착각하는 내 신앙에 어떤 도전을 주는가?
3. 같은 구조의 위계가 자기를 향할 수도, 보좌를 향할 수도 있다면, 내 일상의 질서는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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