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3
두 대천사의 역할 분담
다니엘은 페르시아 강가에서 한 환상을 보았다. 숫양과 숫염소가 부딪치고, 작은 뿔 하나가 하늘의 별까지 떨어뜨리는 격렬한 장면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어 망연히 서 있던 그에게, 한 사람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소리가 나서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다니엘 8:16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천상의 한 존재가 무대로 걸어 나온다. 성경 전체에서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불리는 자리다. 그는 칼을 들고 등장하지 않는다.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가 받은 임무는 단 하나,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가브리엘은 그렇게 계시의 사자로 성경에 진입한다.
구약 어디에도 천사의 고유한 이름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씨름한 이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고,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난 이도 자신의 이름을 "기묘자"라 부르며 감추었다. 그런데 다니엘 8장에서 천상의 한 음성이 굳이 한 천사를 이름으로 호명한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그 사역이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것임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가브리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강하시다"라는 뜻을 품는다. 그러나 그가 휘두르는 강함은 무력이 아니다. 그는 "어두운 말을 밝히 알게 하는" 자다.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잠언 25:2봉인된 환상을 그대로 두면 인간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가브리엘은 그 봉인을 풀어 읽어주는 사역에 부름받았다. 묵시(默示)는 침묵이 아니라, 풀어 말함이다.
다니엘서가 가브리엘로 시작된다면, 유다서는 또 다른 대천사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다서 1:9미가엘은 다툼의 자리에 서 있다. 마귀와 변론하며, 그러나 자기 입으로 비방하지 않고 주의 권위를 호명한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전투의 임무다. 같은 천상의 무리 안에서, 한쪽은 펜과 같이 말씀을 풀어 전하고, 한쪽은 방패와 같이 진영을 지킨다.
이것이 본 권이 붙드는 이미지다. 오른팔과 왼팔, 한 몸의 두 사역. 가브리엘 없이 미가엘만 있다면 하늘의 뜻은 인간 앞에서 침묵할 것이고, 미가엘 없이 가브리엘만 있다면 전해진 말씀은 어둠의 세력 앞에서 무방비할 것이다. 두 천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두 팔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말한 원리가 천상에서 먼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2:21가브리엘에게 주어진 명령은 "깨닫게 하라"였다. 이 동사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임한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직장에서 후배에게, 교회에서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자주 무엇인가를 "풀어 말해 주어야" 하는 자리에 선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가브리엘의 후예다. 화려한 권능이 아니라, 인내 있는 설명이 천사의 일이었음을 기억할 때, 단조로워 보이는 우리의 가르침과 통역과 번역의 수고가 거룩한 자리에 놓인다.
가브리엘은 펜으로, 미가엘은 방패로, 같은 보좌를 섬긴다. 하늘의 협력은 다툼이 아니라 분담이다.
묵상 질문
1. 다니엘 8:16에서 가브리엘이 받은 임무는 "깨닫게 하라"였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풀어 말해 주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2. 가브리엘의 말씀 사역과 미가엘의 전투 사역 중, 지금 나의 신앙은 어느 쪽에 더 치우쳐 있습니까? 균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3. 나와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경쟁자"로 보고 있던 이를 "한 몸의 다른 팔"로 다시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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