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2
천사들의 협력 사역
다윗은 시편의 마지막 송영에서 한 사람의 입으로는 다 부를 수 없는 찬양을 청한다. 그는 자신을 넘어 하늘의 권세 있는 존재들에게 손을 내민다.
여호와를 받들어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의 모든 사역자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21이 짧은 한 절에 두 번의 복수가 박혀 있다. "모든 천군"과 "모든 사역자". 다윗은 단수의 위대한 사자(使者)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무리를 부른다. 송축은 한 입에서 시작되지만 한 입에 머물지 않는다. 천사 사역의 본질이 여기서 드러난다.
성경은 하늘의 존재를 자주 떼지어 묘사한다. 야곱이 외로운 길에서 마주친 자리는 한 천사가 아니라 군대였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32:1-2마하나임은 "두 진영"이라는 뜻이다. 한 곳에 모인 무리가 아니라, 서로 마주 본 두 무리. 위계 속에 협력이 있고, 협력 속에 위계가 있다는 사실이 지명 자체에 박혀 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자들이 들은 것도 한 천사의 독창이 아니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누가복음 2:13). 처음 한 천사가 복음을 알렸지만, 그 복음이 우주의 무게를 갖는 순간 함께 부르는 무리가 등장한다.
한 자루의 촛불은 어둠을 밀어낸다. 그러나 수천 자루가 정렬할 때 그 자리는 더 이상 촛불의 자리가 아니라 빛의 자리가 된다. 천사들의 사역은 이 등불의 도열에 가깝다. 각자는 고유한 광채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넘어선 한 빛에 들어 있다.
이사야가 본 그룹들도 단독이 아니라 마주 서서 부른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이사야 6:3). 거룩은 한 목소리가 아니라 마주 부르는 응답 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사도 요한이 보좌 둘레에서 들은 노래도 마찬가지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요한계시록 5:11천사의 셈법은 늘 무리의 셈법이다. 단수 사자는 종종 등장하지만, 그 단수도 항상 보이지 않는 합창 위에 서 있다.
이 협력의 동학은 본 시리즈 G01에서 묵상한 삼위 페리코레시스의 천사적 반사다. 서로 돌아 흐르는 사랑이 위에서 먼저 있었기에, 그 빛이 천사의 무리에 비쳐 한 사역을 이루게 한다. 우리가 사는 자리도 이 거울 앞에 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내가 한다"의 자리에 머무는 한 우리는 천사보다 적게 사역하는 셈이다. 능력 있는 사자들의 첫 표징은 한 일을 함께 들기 위해 자기 손의 무게를 기꺼이 다른 손에 나누는 것이다.
한 촛불의 사역에서 멈추지 말라. 곁에 선 등불을 세어 보라. 하나님의 일은 늘 합창으로 완성된다.
묵상 질문
1. 나의 사역과 일상에서 "단수"의 자리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곁에 함께 부를 수 있는 동역의 음성을 찾고 있는가?
2. 마하나임의 두 진영처럼, 내가 속한 공동체에는 마주 서서 서로를 부르는 응답의 구조가 있는가?
3. 수천의 등불 가운데 한 등불로 머문다는 것은 나의 자존에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