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6 · EP 5
거짓 가르침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단락에서 제자들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남기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태복음 7:15이 말씀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하다. 거짓 선지자가 사탄의 뿔과 꼬리를 달고 나타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온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모양새, 가장 친숙한 신앙의 언어, 가장 익숙한 예배의 형식 그 안에 자리를 잡는다. 형식이 친숙할수록 분별은 어려워진다.
예수께서 곧이어 주신 판단 기준은 외형이 아니라 결실이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사람도 그 삶이 맺어 놓은 열매로 정체가 드러난다. 사도 바울도 같은 원리를 일상의 분별로 옮겨 가르쳤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라디아서 5:22-23설교가 아무리 유려해도, 집회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 사람의 가정과 인격과 돈과 말의 자리에 이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멈춰 서서 다시 보아야 한다. 옷은 빌려 입을 수 있어도, 열매는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양털은 더 정교해졌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따뜻한 영상, 단톡방을 도는 감동적인 간증, "이 책 한 권이면 인생이 바뀝니다"라는 자기계발 신앙의 문구. 노골적인 이단보다 훨씬 더 자주 우리를 흔드는 것은 이런 익숙한 얼굴의 거짓이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는 일찍이 이렇게 외쳤다.
"화 있을진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자들이여"
이사야 5:20분별은 거창한 신학 토론이 아니다. 듣는 말씀이 나를 회개와 십자가와 이웃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자아의 욕망을 종교의 언어로 포장해 주는가를 묻는 일이다. 사도 요한도 영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 하였고(요한일서 4:1),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시편 119:105) 노래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등불은 충분하다. 다만 켜고 비추어 보아야 한다.
거짓이 무서운 것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옷을 보지 말고 길을 보라. 그 길의 끝에 누가 서 있는지를 보라.
묵상 질문
1. 최근 내가 가장 큰 은혜를 받았다고 느낀 메시지나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어떤 열매를 자라게 했는가? 욕망인가, 성령의 열매인가?
2.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신앙적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이며, 오늘 다시 비추어 본다면 어떻게 평가되는가?
3.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옷을 입은 자로 보이고 있으며, 그 옷 안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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