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10
영원한 교제의 회복
구속사의 마지막 장면은 법정도 아니고 무덤도 아니었다. 신부의 손을 잡고 신랑 앞에 서는 자리, 잔칫상에 둘러앉아 마주 보는 자리였다. 요한이 본 환상의 절정에서 천사는 그에게 받아 적으라고 명령한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9창세기에서 갈라진 관계가 요한계시록에서 혼인으로 봉인된다. 성경 전체가 사실은 한 편의 결혼 이야기였음을, 우리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깨닫는다.
에덴에서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의 발걸음은 약혼자의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신부가 도망쳤다. 그날부터 하나님은 신부를 되찾기 위한 가장 긴 약혼의 시간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모세를 보내신 것도,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것도,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책망하시고 위로하신 것도 모두 이 한 날을 위한 준비였다.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아내 고멜을 다시 사들이는 장면은 그 약혼의 본질을 가장 아프게 보여준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 2:19-20하나님은 신부의 죄값을 자기 피로 치르신 신랑이시다. 이사야 62:5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는 약속은 갈보리 언덕에서 보증되었고, 이제 잔치의 문 앞에서 성취된다.
많은 신자들이 종말을 떠올리며 두려움부터 느낀다. 그러나 요한이 본 종착점은 진노의 잔이 아니라 포도주 잔이었다. 심판은 잔치를 위한 마지막 정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누가복음 14:23에서 주인은 길과 산울가로 종을 보내며 외치게 하신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나님의 마음은 빈자리 없이 둘러앉은 식탁이다.
예수께서 공생애의 첫 표적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그 자리는 마지막 잔치의 예고편이었다. 그분의 사역은 잔치로 시작해 잔치로 끝난다. 그 사이의 모든 십자가와 부활은 잔칫상을 차리시기 위한 신랑의 수고였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이 복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신분이다. 우리는 이미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첫째, 약혼한 사람의 정결로 살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1:8-9가 말하듯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신랑을 위해 마음을 깨끗이 지키는 일이다. 둘째, 다른 청함받은 자들을 가족처럼 대해야 한다. 같은 잔치에 갈 사람들끼리 다투는 일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셋째, 아직 초대장을 받지 못한 이웃에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한다.
구속사의 마침표는 느낌표가 아니라 환영의 미소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역사를 끌어오신 분이 아니라, 끝내 마주 앉아 식사하시려고 모든 것을 견뎌오신 분이다.
묵상 질문
1. 나는 종말을 떠올릴 때 두려움이 먼저 차오르는가, 잔치에 대한 설렘이 먼저 차오르는가.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2. 가장 긴 약혼의 시간을 견디시는 신랑의 마음을 묵상할 때, 내 신앙 여정의 더딘 시기들이 어떻게 다시 보이는가.
3. 같은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과 오늘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잔칫상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회복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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