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9
점점 닮아가는 과정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이 한 줄(빌립보서 1:6)은 성화의 출발선이자 도착선이다. 시작도 그분, 마침도 그분이다. 우리는 중간에 서서 그분의 손길에 우리를 맡길 뿐이다.
성화는 어느 날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조각가의 손 아래 놓인 거친 돌이 마지막 정으로 다듬어지기까지 견디는 긴 시간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안에 이미 천사가 있다고 보았듯, 하나님은 우리 안에 그분의 형상을 보시고 끌과 정을 멈추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화는 우리의 의지력 자랑이 아니라, 시작하신 분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보상하시리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가 그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기 2:12보아스가 룻에게 건넨 이 축복은 성화의 그림자다. 날개 아래로 들어온 자를 그분이 끝까지 책임지신다. 다윗도 같은 확신을 노래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갚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편 138:8).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그분은 결코 중도에 버리지 않으신다.
성화의 신비는 더디다는 것에 있다. 바울조차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고 고백했다. 그러나 더딘 것과 멈춘 것은 다르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호세아 6:3새벽 빛은 단숨에 정오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김없이 밝아온다. 우리의 변화도 그렇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 보여도, 빛은 한 뼘씩 자라고 있다.
여기서 성화의 가장 깊은 신비가 드러난다. 같은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정반대로 들리는 두 명령을 잇대어 놓았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립보서 2:12-13). 내가 이루라 하시면서, 동시에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 하신다. 모순이 아니다. 협력이다. 그분이 일하시기 때문에 내가 일할 수 있고,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더 깊이 다듬으신다.
오늘 내 안의 거친 모서리가 아직 그대로인가. 끌이 멈춘 것이 아니다. 조각가는 가장 어려운 부분을 가장 오래 만지신다.
실생활에서 이 신뢰는 작은 자리에 임한다. 여전히 반복되는 옛 습관, 좀처럼 깎이지 않는 까다로운 성품, 몇 년째 같은 자리에서 무너지는 죄의 패턴 앞에서 우리는 자주 절망한다. 그러나 성화는 내 진도표가 아니라 그분의 작업 일정이다. 오늘 할 일은 단 하나, 다듬으시는 손 아래 머무는 것이다.
묵상 질문
1. 내 안의 변화가 더디다고 느낄 때, 나는 "시작하신 분이 이루신다"는 약속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가?
2. 조각가의 손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 즉 내가 가장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디인가?
3. "내가 이루라"와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두 진실 사이에서, 오늘 나는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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