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7
자녀로 부르심
로마 법정의 풍경을 떠올려 본다. 한 노예가 주인 앞에 끌려 나온다. 그의 손목에는 사슬 자국이 선명하고, 등에는 채찍 자국이 있다. 그런데 그날, 그는 자유 증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호적을 받는다. 주인이 그를 아들로 입양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상속자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은 바로 이 장면을 우리 영혼 깊은 곳에 가져다 놓는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고대 로마법에서 양자 입양은 가장 엄숙한 법적 절차였다. 증인이 서고, 문서가 작성되고, 공적인 선언이 이루어졌다. 한 번 호적에 오르면 친자식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고, 친부모조차 이 관계를 되돌릴 수 없었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양자'라는 단어를 썼을 때, 그들은 이 무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됨은 법적 형식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의 호적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즐겨 인용한 한 구절은 이 진실의 깊이를 보여 준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요한일서 3:1'어떠한 사랑'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랑인가'라는 뜻을 품는다. 이 땅의 어떤 사랑도 흉내 낼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랑이라는 고백이다.
주목할 것은, 양자됨이 우리의 결단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보내사 부르게 하셨다'고 적는다. 부르는 주체는 우리지만, 부르도록 일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같은 진리를 바울은 로마 교회에도 다시 강조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아빠(Abba)'는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던 가장 친근한 호칭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피땀 흘리며 부르셨던 그 호칭(마가복음 14:36)이, 이제 우리 입술에 옮겨졌다. 종은 주인을 '아빠'라 부르지 못한다. 오직 자녀만이 그렇게 부른다.
양자됨은 단지 신분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 방식의 변화다. 종은 명령을 듣고, 결과를 두려워한다. 자녀는 음성을 듣고, 사랑을 신뢰한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종의 방식으로 한다. 실수하면 버려질까 두려워하고, 기도가 부족하면 사랑이 식을까 염려한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자비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는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서 먹을 것을 주었노라"
호세아 11:4실생활에서 이 진리는 작은 곳에서 시험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첫 호흡에 '아빠'라고 불러 보라. 큰 실패를 한 저녁에도, 자녀로서 식탁 앞에 앉아 보라. 호적은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므로, 행위로 잃지도 않는다.
나는 종이 아니라 자녀다. 이 한 문장이 두려움을 사랑으로, 의무를 자유로, 노동을 예배로 바꾼다.
묵상 질문
1. 나는 오늘 하나님을 '주인'으로 대하고 있는가, '아빠'로 대하고 있는가? 그 차이가 어디서 드러나는가?
2. 호적은 행위로 얻지 않으므로 행위로 잃지도 않는다는 진실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두려움은 무엇인가?
3. 성령께서 내 안에서 '아빠'라 부르게 하실 때, 나는 그 음성을 들으며 살고 있는가? 어떤 순간에 그 부름이 가장 선명한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