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1
하나님을 닮은 존재
창세기는 인간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못 박는다. 능력도, 업적도, 소유도 아닌 단 하나의 사실—누구의 형상으로 지어졌는가—가 우리 존재의 첫 단추가 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이 한 절은 구속사 전체의 머릿돌이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비추기 위해 지어졌는가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거울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거울의 영광은 마주 선 빛을 정직하게 반사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인간은 그렇게 지어졌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성, 자유의지, 도덕적 판단력, 창조성 같은 능력으로 환원해 왔다. 그러나 본문은 능력의 목록을 나열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말한다—그분이 우리를 마주 보고 지으셨다는 것. 그래서 형상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 앞에 서 있느냐의 문제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이 곧바로 뒤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상은 홀로 있는 자에게 새겨진 도장이 아니라, 마주한 둘 사이에 흐르는 숨결이다. 하나님이 삼위로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이듯, 그분의 형상을 받은 인간 또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명기 6:4한 분 하나님 안에 충만한 사랑이 흐르듯, 그분을 비추는 인간의 본질도 사랑의 마주봄이다. 그래서 죄는 단지 규범 위반이 아니라 마주봄의 단절이다. 거울이 등을 돌리면 빛은 사라진다.
구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형상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로새서 1:15훼손된 거울을 새 거울로 바꾸시기 위해 하나님은 참 형상을 친히 보내셨다. 그리스도를 바라본 자가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본래 비추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사도는 이 회복의 과정을 한 문장으로 묶는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고린도후서 3:18).
인간은 빛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자다. 등을 돌리는 순간 어둠이 되고, 마주 서는 순간 영광이 된다.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얼굴은 거울 속의 자신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마주서야 할 한 얼굴이 있다. 일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 성취가 곧 자아인 시대에 창세기 1:27은 우리를 본래 자리로 끌어당긴다. 당신은 무엇을 해내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형상으로 이미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묵상은 거울을 닦는 행위와 같다. 시편 기자의 고백—"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편 42:11)—은 자기 비하에 빠진 영혼을 다시 그분 앞으로 돌려세운다. 거울이 본연의 일을 하려면, 빛을 향해 다시 돌아서야 한다.
묵상 질문
1. 나는 평소 내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성취, 관계, 소유,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2. 형상을 '능력'이 아닌 '마주봄'으로 이해할 때, 오늘 내 삶에서 회복되어야 할 마주봄의 자리는 어디인가?
3. 그리스도라는 참 형상을 바라봄으로 내가 닮아가야 할 한 가지 모습은 무엇인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