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4 · EP 6
욥기·바울의 가시
한 장의 책을 펼치기 전, 우리는 먼저 그 책의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이 권의 무게중심은 단 한 구절에 매달려 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복판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 "모든 것"은 듣기 좋은 일들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직전에 열거한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까지를 포함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 안에 사탄의 활동마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가장 흉포한 원수를 무력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원수의 칼을 들어 자기 자녀의 영혼을 수술하는 메스로 사용하신다.
이 신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옛 의사들은 독사의 독을 정제하여 해독제로 만들었다. 같은 독이 어떤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죽음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생명의 약이 되기도 한다. 독은 그대로 독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손이 의사의 손일 때 약이 된다. 사탄은 여전히 사탄이고, 그의 의도는 끝까지 파괴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모든 화살을 받아드시는 손이 하나님의 손일 때, 그 화살촉은 영혼을 찌르되 죽이지 않고 종양을 도려낸다.
욥기의 첫 두 장은 이 진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사탄은 욥을 무너뜨리고자 했고, 실제로 그의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빼앗았다. 그러나 욥은 잿더미 위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주목할 것은 욥의 시야다. 그는 사탄을 보지 않고 여호와를 본다. 사탄이 두드린 모든 매질의 끝에 있던 것은 결국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6)라는 더 깊은 만남이었다. 적의 손이 휘두른 채찍이 욥을 하나님의 얼굴 앞에 무릎 꿇게 한 것이다.
바울 역시 같은 진리를 자기 몸에 새겼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고린도후서 12:7). 바울은 그 가시의 출처를 정확히 안다. 그것은 사탄의 사자다. 그러나 그 가시를 자기에게 허락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가시의 끝에서 들려온 음성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였다.
이 신학은 우리 일상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 빛을 비춘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왜 이 배신이 내게 왔는가. 왜 이 질병이 우리 가정에 들이닥쳤는가. 왜 이 부당한 손해를 견뎌야 하는가. 성경은 이 질문에 즉답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를 약속한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는 약속이다.
합력은 자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바로 그 사랑의 자리에 서 있을 때, 적의 칼은 더 이상 우리를 끝장내는 무기가 아니라 우리를 다듬는 도구가 된다.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것처럼,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이사야 54:17)는 약속이 실제 우리의 시간 속에 임한다.
사탄의 의도는 끝까지 파괴이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끝까지 빚으심이다.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손을 거치며, 같은 독이 다른 약병에 담긴다.
이 권의 모든 장은 이 한 구절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앞으로 사탄이 어떻게 시험의 자리에 등장하는지, 어떻게 패배의 모양으로 위장한 승리가 십자가에서 완성되는지, 어떻게 교회의 핍박이 복음의 확장이 되는지 차례로 들여다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길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마주할 진리는 변함없다. 독을 약으로 쓰시는 손이 있다. 그리고 그 손은 지금도 우리의 잿더미 위에 머물러 계신다.
묵상 질문
1. 내 인생에서 "적의 칼"처럼 느껴졌던 사건이 돌이켜 보니 "의사의 메스"였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때 하나님의 손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습니까?
2. 로마서 8장 28절의 "모든 것"에 지금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건을 사탄의 의도가 아닌 하나님의 빚으심의 관점에서 다시 본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집니까?
3. 욥처럼 잿더미 위에서, 또는 바울처럼 가시를 안고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고백해야 할 자리가 지금 내게 있다면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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