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3 · EP 8
직장·사회의 관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로마서 13:1). 사도 바울이 네로의 그늘 아래 있던 로마 교회를 향해 이 문장을 적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말씀을 너무 쉽게 풀어내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게 한다. 권세를 칭송하는 시대가 아니라 권세가 두렵던 시대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사회 질서 안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했다.
한 채의 건물이 서는 원리는 단순하다. 벽돌이 자기 자리에서 다른 벽돌의 무게를 받아낼 때 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자기 자리를 벗어난 벽돌은 아름다워 보여도 결국 균열을 만든다. 세상도 그렇다. 하나님은 가정과 직장, 도시와 나라를 통해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질서의 골조를 세우셨다. 그리스도인의 첫 자리는 이 골조를 부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몫의 하중을 묵묵히 견디는 자리다.
"너희는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베드로전서 2:13베드로 역시 같은 음성을 낸다. 순종은 굴종이 아니라 주를 위한 자발적 자리 지킴이다. 잠언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이 자리의 배후를 보여 준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도랑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1). 권세자의 결정조차 봇도랑의 물줄기처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고백,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두려움 없이 질서에 머무는 이유다.
그러나 순종은 무조건이 아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막아섰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분명히 말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29). 위에 있는 권세가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할 때,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침묵이 아니라 거룩한 거절이다. 다니엘이 창문을 열어 두고 기도한 것도, 세 친구가 풀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은 것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원리로 선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권위는 두 얼굴을 가진다.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권위는 하나님의 손이 만든 보호막이고, 우상화될 때 권위는 우리가 거절해야 할 시험이 된다. 그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은 분별하며 머무는 자가 된다.
오늘 우리의 로마는 사무실 책상이며, 회의실의 위계이며, 민원 창구 앞의 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두고 우리는 자주 "이 자리를 떠나면 자유로워질 텐데"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바울은 다르게 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자리는 도망쳐서 거룩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주를 향해 일할 때 거룩해진다.
벽돌은 자기가 누구의 무게를 받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자기 자리에 있음으로 위층의 누군가가 안전히 산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그리스도인, 정해진 신호를 지키는 운전자, 공정하게 평가받기 위해 정직하게 평가하는 동료 — 이 평범한 자리들이 바로 로마서 13장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예배다. 화려한 저항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자기 자리에서의 신실함.
묵상 질문
1. 내가 지금 서 있는 가장 작은 사회적 자리(직장·이웃·민원·납세)에서 나는 "주께 하듯"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에게 하듯" 마지못해 버티고 있는가?
2. 권위가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신앙적 거절이 필요한 자리였는가, 아니면 단지 내 불편함이었는가?
3.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 주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돌들"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전체 본문은 구매 후 EPUB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