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3 · EP 6
엘리야·엘리사, 바울·디모데
요단강 동편, 두 선지자가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다. 스승은 곧 회오리바람에 실려 떠날 것이고, 제자는 그 자리에 남는다. 그때 엘리야가 묻는다. "내가 네게서 떠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는 가장 무거운 청을 꺼낸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열왕기하 2:9이 한 마디는 멘토와 제자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단숨에 뒤집는다. 제자는 스승의 절반을 얻기를 구하지 않는다. 갑절을 구한다. 그리고 스승은 그 무례해 보이는 청을 꾸짖지 않고 길을 열어 준다. 받는 자가 주는 자보다 더 큰 자로 자라기를 기뻐하는 자리—이것이 성경이 그려 보이는 멘토링의 첫 모델이다.
갑절을 구한 엘리사가 욕망 가득한 후계자였다면 엘리야는 분명 막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갑절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짊어질 짐의 크기였다. 엘리야가 떠난 뒤 이스라엘은 더 어두워질 것이고, 바알의 단은 더 견고해질 것이며, 왕들은 더 굳어진 마음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 시대를 통과하려면 스승보다 더 큰 능력이 필요했다.
참된 제자는 스승의 그늘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더 큰 짐을 질 준비를 한다. 갑절을 구하는 자는 갑절의 고독과 갑절의 책임을 함께 청하는 자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손을 얹어 자신의 자리를 넘겼고, 광야 사십 년의 짐을 가나안 정복이라는 더 무거운 짐으로 바꾸어 건넸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그에게 순종하였더라"
신명기 34:9회오리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엘리야의 겉옷이 떨어진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집어 들고 요단을 친다. 물이 갈라진다. 그러나 갈라진 것은 겉옷 때문이 아니다. 겉옷이 상징하는 영의 이어받음 때문이다. 형식은 손에 잡히지만, 본질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멘토링이 권위의 이양이나 직책의 세습으로 전락하는 자리에서는 겉옷만 남고 영은 사라진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도 같은 무게가 흐른다. 사슬에 매인 노사도가 젊은 제자에게 보내는 것은 가르침의 목록이 아니다. 영의 불씨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디모데후서 1:6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가진 만큼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받은 은사가 안에서 다시 불일듯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그가 구한 것도 부와 장수가 아니라 듣는 마음이었음을 기억하자(열왕기상 3:9). 받는 자가 더 큰 자로 세워지는 자리에는 항상 이 역설이 흐른다—내 것을 비울수록 더 큰 것이 부어진다.
오늘 우리의 멘토링은 너무 자주 통제로 흐른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배우는 자는 스승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야망으로 삼는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았고, 엘리사는 갑절을 구하면서도 스승의 옷자락 끝을 끝까지 따라갔다.
참된 멘토는 자신보다 큰 제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참된 제자는 스승보다 더 큰 짐을 질 각오로 갑절을 구한다.
당신의 일터에, 가정에, 신앙 공동체에 후배가 있는가. 그가 당신을 넘어서기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반대로 당신이 누군가의 가르침 아래 있다면, 절반이 아닌 갑절을 구할 만큼 그 자리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받는 자리는 결국 주는 자리로 가는 통로다. 갑절의 영은 갑절의 섬김으로만 흘러간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의 겉옷을 따라 걷고 있으며, 그 스승에게서 절반이 아닌 갑절을 구할 만한 사명의 무게를 발견하고 있는가?
2. 내 아래에 있는 후배나 자녀, 제자가 나를 넘어서는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3. 형식(겉옷)과 본질(영) 가운데, 내가 누군가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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