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2 · EP 7
음부와 영적 경계
베드로후서는 어둠 세력의 거주지에 대해 단호한 한 문장을 남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베드로후서 2:4여기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타르타로스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만 등장한다. 베드로는 그 한 번의 사용으로 어둠 세력의 영적 좌표를 못 박았다. 타르타로스는 형벌의 종류가 아니라 장소다. 그것도 그냥 장소가 아니라 빛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 거룩한 임재로부터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분리된 좌표다.
창조의 첫째 날, 하나님은 빛을 어둠으로부터 나누셨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창세기 1:4-5나뉨은 곧 거리이며, 거리는 곧 신학이다. 타르타로스는 그 나뉨이 극단까지 밀려간 자리, 곧 빛의 반대편 끝이다. 죄가 만든 결과는 형벌의 강도가 아니라 임재로부터의 거리로 먼저 측정된다.
성경은 어둠의 지리를 한 단어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음부(스올·하데스)는 죽은 자들의 일반적 처소를 가리키고, 무저갱(아뷔소스)은 결박된 영들이 갇혀 심판을 기다리는 잠정적 감금소이며, 불못은 마지막 날 최종 형벌이 집행될 종말의 자리다. 타르타로스는 이들과 또 다르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각 범죄한 천사들이 거주하는 어두운 구덩이다. 종말이 아니라 현재, 인간이 아니라 천사, 일반적 죽음의 처소가 아니라 특정한 세력의 거주 구역이다.
욥기는 이 깊이를 시적으로 증언한다.
"그는 깊은 것을 어둠 속에서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욥기 12:22지리적 어둠은 도덕적 어둠과 겹친다. 빛에서 멀어진 자는 빛으로부터의 거리만큼 자신의 정체가 가려진다. 타르타로스에 갇힌 세력이 인간의 마음속 어둠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자기와 같은 좌표를 가진 자리를 사랑한다.
이사야는 거룩한 임재의 중심을 이렇게 노래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사야 6:3성경의 공간은 임재의 농도로 측정된다. 지성소는 가장 짙은 임재의 자리이고, 타르타로스는 그 반대편 가장 옅은 자리, 사실상 임재가 차단된 자리다. 그래서 어둠 세력은 거리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들의 죄는 단지 반역이 아니라, 반역의 결과로 떨어진 좌표 그 자체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말, 어떤 시선, 어떤 습관을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임재의 농도가 짙어지는 쪽으로 한 걸음 옮기든지, 옅어지는 쪽으로 한 걸음 옮긴다. 빛에서 멀어지는 길은 거창한 배교가 아니다. 사소한 한 걸음, 또 한 걸음의 누적이다. 사도는 그래서 빛 가운데 걷기를 명령한다. 거리는 한 번에 벌어지지 않고, 한 걸음씩 벌어진다.
형벌은 거리의 결과이지, 거리의 원인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은 임재로부터의 분리, 그 자체다.
묵상 질문
1. 내 일상에서 거룩한 임재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게 하는 사소한 습관은 무엇인가?
2. 빛에서 멀어진 거리가 곧 그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면, 오늘 내 좌표는 어디쯤인가?
3. 형벌의 강도보다 임재의 거리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내 신앙을 어떻게 바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