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2 · EP 6
내부 분열과 동맹
예수께서 비방하는 자들 앞에서 한 가지 원리를 못 박으셨다. 이 말씀은 권 전체의 무게중심이며, 어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첫 번째 창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25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축귀를 두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라고 비방했다. 주님의 답은 단순한 변호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구조 법칙이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낸다면 그의 나라가 어찌 서겠느냐는 반문. 어둠의 왕국에도 적용되는 동일한 원리, 즉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반드시 황폐해진다는 법은, 그 자체로 사탄 측 가장 깊은 약점을 드러낸다.
어둠의 세력은 결코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들의 결속은 우정이 아니라 공모이며, 동맹이 아니라 거래다. 욥기에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기 1:7)라고 답할 때, 우리는 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임을 본다. 멈추면 무너지는 자, 결속을 위해 끝없이 새 먹잇감을 찾아야 하는 자. 그 내부에는 서로를 향한 시기와 권력다툼이 잠복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왕에게 빗대어 어둠의 우두머리의 본성을 폭로한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 가장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사야 14:13-14스스로를 가장 높이려는 본성은 단 한 자리만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어둠의 군단 안에는 본질적으로 두 번째 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존재들이 가득하다. 이것이 그들의 구조적 자기모순이다. 결속해야 살지만, 결속의 본성이 결속을 깨뜨린다.
어둠의 진영은 멀리서 보면 굵은 동아줄처럼 강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안쪽 가닥 하나하나가 이미 부식되어 있다. 사사기에서 미디안 진영이 기드온의 삼백 용사 앞에 무너진 장면은 그 단면이다.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사사기 7:22외부의 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칼이 친구를 향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손가락 하나 들어 직접 치지 않으셔도, 어둠의 진영은 위기 앞에서 스스로를 찌른다. 야고보 사도가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4:1)라고 물었듯, 정욕은 결속을 가장한 분쟁의 씨앗이다.
그렇다면 사탄의 나라는 왜 아직 무너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들 사이에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공통의 미움이 있기 때문이다. 빛을 향한 증오가 어둠을 잠시 한 묶음으로 묶는다. 그러나 미움으로 묶인 끈은 끝내 풀린다. 그래서 그들의 결속은 늘 시한부다.
분열을 향한 본성과 결속을 향한 필요 사이에서, 어둠은 자기 자신을 갉아먹으며 버틴다. 그 변증법 자체가 그들의 패배 공식이다.
이 진리는 우리 일상에 곧장 닿는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 우리는 누구의 원리를 살고 있는가. 미움이 잠시 우리를 묶을 수는 있다. 험담은 빠르게 친밀감을 만든다. 그러나 그 친밀감의 끝은 황폐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묶인 띠는 갈수록 굵어진다. 어둠의 약점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결속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점검한다.
묵상 질문
1. 나의 인간관계 가운데 "공통의 적"이나 "공통의 미움"으로 묶인 결속은 없는가. 그 끈의 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2. 외부에서 강해 보이지만 내부에서 이미 썩어가고 있는 영역이 내 삶에는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그 가닥을 어떻게 다시 엮어야 하겠는가.
3. 마태복음 12:25의 원리를 사탄의 나라가 아니라 내 마음의 나라에 적용한다면, 지금 내 안에서 분쟁하고 있는 두 마음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