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2 · EP 1
마귀·정사·권세·주관자
바울이 옥중에서 띄운 서신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갑작스러운 군사 용어로 전환한다. 그는 어둠을 단일한 덩어리로 부르지 않고, 마치 적군의 편제를 들여다본 정찰병처럼 네 층위로 분류했다. 그 시작은 이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이 한 구절 안에 네 계단이 있다. 정사, 권세, 세상 주관자, 그리고 가장 위쪽의 악의 영. 우리는 보통 어둠을 카오스로 상상한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검은 안개. 그러나 바울이 보여준 어둠은 그 반대다. 어둠은 구조를 가졌다. 무질서가 아니라 위계다.
첫째 층은 정사이다. 헬라어 아르카스는 시초, 으뜸을 뜻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선 작전을 수행하는 장교들이다. 둘째 층은 권세로, 위임받은 힘을 휘두르는 중간 지휘부다. 셋째 층 세상 주관자는 이 시대의 흐름 자체를 조종하는 전략급 사령부에 해당한다. 마지막 넷째 층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은 가장 위, 보이지 않는 최상층에 자리한다. 흥미롭게도 위로 올라갈수록 빛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어둠이 더 짙어진다. 일반적인 조직도에서 정점은 빛나는 자리지만, 이 어둠의 역피라미드는 거꾸로 박혀 있다. 꼭대기가 가장 검다.
구약은 일찍부터 이 사실을 암시했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응답이 도착하기까지 이십일이 걸렸다고 천사는 보고한다.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다니엘 10:13"바사 왕국의 군주"라는 표현은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다.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권한을 위임받은 영적 통치자다. 바울이 말한 셋째 층, 세상 주관자의 그림자가 이미 다니엘서에 어른거리고 있다. 욥기 1장에서도 사탄은 단독자로 등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이는 공식 자리에 함께 들어간다. 어둠은 처음부터 혼자 떠도는 부랑자가 아니라, 편제를 갖춘 세력으로 묘사된다.
예수께서도 이 위계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이 그분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두고 시비할 때 그분은 이렇게 답하셨다.
"사탄이 만일 스스로 분쟁하면 그가 어떻게 서겠느냐"
누가복음 11:18이 문장은 어둠 진영에도 지휘 계통과 군기가 있음을 전제한다. 분쟁이 없도록 유지되는 명령 체계, 그것이 사탄의 군대를 군대답게 만든다.
여기서 결정적인 대조가 드러난다. 삼위 하나님은 위계가 아니라 일체로 존재하신다. 성부·성자·성령은 위아래의 계단이 아니라 동등하신 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명기 6:4반면 어둠은 일체가 될 수 없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통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은 계급으로만 결속한다. 두려움과 강제가 그들의 접착제다. 빛은 사랑으로 하나이고, 어둠은 위계로 하나인 척한다. 이 차이가 결국 종말의 승부를 가른다.
어둠도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마주한 적이 안개가 아니라 편제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 또한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신 갑주여야 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 속 적용은 단순하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마음의 한 구석에서 부딪히는 악의 진동을 그저 운이 나쁘다고 치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쩌면 일선의 정사일 수 있고, 어떤 흐름은 세상 주관자가 펴놓은 큰 그물의 일부일 수 있다. 적을 정확히 분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막연한 분노를 거두고 정확한 기도를 시작한다.
묵상 질문
1. 나는 평소 어둠을 무질서한 안개로 보아왔는가, 아니면 편제를 갖춘 세력으로 인식해 왔는가? 그 차이가 내 기도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2. 에베소서 6:12의 네 층위 가운데, 지금 내 삶을 가장 강하게 짓누르는 것은 어느 계단의 작용처럼 느껴지는가?
3.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일체와 사탄 진영의 강제된 위계를 묵상할 때, 나는 어느 쪽 결속에 더 가까이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