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코레시스 표지

미리보기 · 시즌 2 · G01 · EP 10

페리코레시스

삼위 교제가 주는 관계의 모델

정가3,000원
발행2026.06.30
ISBN9791176580328
저자AI, 박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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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목차

  1. 1.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2. 2. 춤추는 세 무용수
  3. 3. 내 안에 너, 너 안에 내가
  4. 4. 사귐이 곧 존재이다
  5. 5. 열려 있는 삼위의 사회
  6. 6. 사랑이 머무는 자리
  7. 7. 모든 관계는 그 춤의 반사다
  8. 에필로그
First Chapter

제1장 미리보기

Chapter 01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요한복음 17:21이 여는 페리코레시스의 문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드린 마지막 기도는 자신을 위한 청원이 아니라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한 간구였다. 그 기도의 정점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이 한 문장은 단순한 단결의 권면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 내주(서로 안에 거하심)가 모든 인간 관계가 도달해야 할 원형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이다. 후대 교부들은 이 신비를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고 불렀다. 헬라어로 '서로 돌며 춤추다'라는 어원을 품은 이 말은, 삼위 하나님이 분리된 세 개체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 한 사랑을 이루신다는 뜻이다.

춤추는 세 무용수

세 명의 무용수를 떠올려 보라. 한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다른 둘이 그 자리를 비워주고, 한 사람이 회전하면 나머지가 그 동선을 받쳐 준다. 누구도 혼자 동작을 완성하지 않는다. 다른 둘이 없으면 그 동작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그러하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자신을 내어 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을 돌려 드리며, 성령은 그 사랑의 흐름 그 자체로 두 분 사이를 영원히 순환하신다.

구약은 이 신비를 한 분 하나님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서 미리 비추어 두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명기 6:4

유일하신 그 한 분이 어떻게 사랑이실 수 있는가. 사랑은 본질상 관계를 요구한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8)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안에 영원히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와 사랑 그 자체가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은 외롭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미 충만한 교제이셨다.

반사하는 거울들

20세기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과 정교회 신학자 요한 지지울라스는 오랫동안 잊혔던 이 페리코레시스 신학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관계 안에서 존재하시는 분이라면,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관계 안에서만 비로소 존재한다고. 홀로 선 자아, 타자를 도구로 삼는 자아, 자기 안에 갇힌 자아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모습이다.

그래서 바울의 권면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존재론적 부름이 된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부부가 서로에게 자리를 비워줄 때,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이 아니라 인격으로 마주할 때, 교회가 약한 지체를 더 귀히 여길 때(고린도전서 12:22), 우리는 미약하나마 삼위의 춤을 따라 추는 셈이다. 이 권 앞으로 펼쳐질 모든 관계의 자리—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는 결국 페리코레시스라는 한 원형의 다양한 반사일 뿐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내 영토에 편입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그가 거할 자리를 내어 주고 나 또한 그의 안에 거하기를 청하는 일이다.

오늘 식탁에서 마주 앉은 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 자리에서 우리가 연습해야 할 것은 의무가 아니라 춤이다. 상대가 들어올 자리를 비우고, 그가 회전할 때 그 동선을 받쳐 주는 일. 그 작은 동작 하나가 영원의 춤을 땅 위에 옮겨 적는다.

묵상 질문

1.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라는 예수의 기도가 오늘 나의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2.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를 내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하는가, 아니면 그가 거할 자리를 내 안에 비워 두는가?

3. 삼위 하나님의 춤을 닮으려면, 오늘 내가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의 동작을 받쳐 주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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