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1 · EP 4
파송과 임재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실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제자들에게 남기신 약속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한 분의 오심에 관한 약속이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이 한 구절 안에 삼위일체의 마지막 비밀이 잠겨 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비교적 자주 묵상된다. 그러나 성부와 성령 사이의 관계는 종종 가려져 있다. 예수께서는 이 가려진 축을 열어 보이신다. 성령은 어디서 오시는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분이시다.
옛 선지자는 메마른 시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2:13성부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그 샘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강물이시다. 강물이 샘과 분리될 수 없듯, 성령은 성부와 분리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강물은 샘에 머물지 않고 흘러 들판과 골짜기, 메마른 땅을 적신다. 성령의 발출이란 바로 이 흐름이다. 영원한 샘에서 솟아나 모든 곳에 닿으시는 흐름. 시편 기자가 노래한 그 흐름이 곧 그것이다.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도다"(시편 46:4).
창세기 첫 장에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라고 기록될 때, 그 영은 이미 성부에게서 나오신 분이셨다.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삼손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영', 다윗에게 부어진 영, 선지자들의 입을 열게 하신 영 — 이 모든 흐름은 한 샘에서 나온 한 강물이었다. 다만 구약에서는 그 영이 익명에 가깝게, 사역의 옷을 입고 잠깐씩 나타나셨다. 신약에 이르러 예수께서 비로소 그 영의 이름과 출처를 또렷이 말씀하신다. "보혜사", "진리의 영",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분.
성부의 임재는 추상이 아니다. 그 임재는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 성부의 깊음을 우리에게 가져오시는 분, 그분이 성령이시다. 발출은 머나먼 신학의 단어가 아니라 매일 우리 호흡에 닿는 사건이다.
오늘 메마른 일상 한가운데서 잠시 멈추어 보라. 영혼이 갈한 곳, 관계가 막힌 곳, 결단이 필요한 자리. 그 모든 곳에 아버지의 샘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닿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할 일은 터진 웅덩이를 더 깊이 파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그 강물 앞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샘은 멀리 있지 않다. 강물이 이미 내 발등까지 와 있다.
묵상 질문
1. 나는 성령을 단지 '능력'으로 구할 때가 많은가, 아니면 '아버지께로부터 흘러오신 분'으로 맞이하고 있는가?
2. 내 삶에서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 — 하나님 아닌 것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려 한 자리는 어디인가?
3. 성부의 임재가 성령으로 내게 닿는 순간을 최근 언제 경험했는가? 그 강물이 지금 어디로 더 흘러가기를 원하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