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0 · EP 4
마라나타 -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이 아람어 한 마디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든 소망이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이 고백은 박해의 어둠 속에서도 성도들의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원형경기장의 맹수 앞에서도, 로마 병사의 칼날 앞에서도 이 말을 되뇌었습니다. 재림은 그들에게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매 순간 숨 쉬게 하는 산소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 유배지에서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닫았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성경 전체가 이 간절한 외침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신앙의 종착점이자 정점이 바로 주님의 다시 오심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사라진 신앙은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적 습관이거나 도덕적 자기계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팔짱을 끼고 하늘만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 가르치신 기다림은 깨어 준비하는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들었습니다. 기다림의 진위는 준비의 깊이로 드러납니다.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며 옷을 단장하고 마음을 정결케 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 역시 날마다 자신의 영혼을 점검하며, 의의 세마포를 준비해야 합니다(요한계시록 19:7~8 참조).
바울은 이 기다림의 자세를 로마서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로마서 13:11재림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게 하는 동력입니다.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용서하지 못한 형제, 미루어 둔 순종, 놓아버린 기도가 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종말을 앞둔 성도에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베드로후서 3:11) 살라고 권했습니다.
기다림은 게으름의 핑계가 아니라, 사랑의 가장 뜨거운 형태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자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직장에서의 성실, 가정에서의 섬김, 이웃을 향한 긍휼—이 모두 신부의 단장이 되어야 합니다. 마라나타를 고백하는 입술은, 그 고백에 합당한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됩니다.
묵상 질문
1. 나의 신앙에서 "마라나타"의 간절함은 얼마나 살아 있습니까? 재림의 소망이 흐려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정리되지 않은 관계, 중단된 순종, 숨겨둔 죄가 있습니까? 지금 무엇부터 준비해야 합니까?
3. 나의 오늘 하루 일상이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며 단장하는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