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10 · EP 1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 나라를 죽음 이후에 가게 되는 먼 나라, 혹은 역사의 끝에나 도래할 미래의 사건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 말씀은 예고가 아니었다. 선포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이 땅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1장 20절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죄인을 용서하실 때마다, 그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이 세계에 침투하는 사건이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이미(already)'의 차원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새 시대는 이미 열렸다. 그분이 밥상에 죄인들과 함께 앉으실 때, 하나님 나라의 식탁이 미리 차려진 것이다. 그분이 나병환자의 손을 잡으실 때, 새 창조의 질서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진실은 우리의 신앙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하나님 나라를 미래로만 미루면, 신앙은 현실을 견디는 방어막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붙들면, 신앙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나라를 살아내는 참여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세상에는 불의가 넘친다. 이것이 '아직(not yet)'의 차원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씨앗으로 심겨졌으나, 아직 열매를 다 맺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긴장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우리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매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기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를 향한 간절한 요청이며, 동시에 이미 시작된 나라에 대한 확신의 선언이다.
우리는 두 시대의 경계에 살고 있다. 옛 세상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고, 새 세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긴장 속에서, 이미 임한 나라의 증인으로 서도록 부름받았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진리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다르게 읽게 한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 상처 입은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용서받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땅에 심는 행위다. 우리는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임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 속 어딘가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뿌려질 자리가 있다. 그것은 크고 화려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작은 빛 하나가 이미 임한 나라를 증언하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묵상 질문
1. 나는 하나님 나라를 주로 미래의 일로 생각해왔는가, 아니면 지금 이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차이가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2. 오늘 내 주변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날 수 있는 구체적인 순간은 어디인가? 내가 그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3.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 긴장 속에서 나는 어떻게 믿음을 붙들고 기도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