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10
한 몸의 지체로
성경의 첫 장, 창조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선언으로 가득합니다. 빛도, 땅도, 바다도, 식물도, 동물도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이르러 처음으로 "좋지 아니하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아직 죄가 들어오기 전, 에덴동산의 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혼자 있음"을 좋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결혼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존재 구조 자체가 관계를 필요로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창조의 설계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온전해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지만, 사역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분은 열두 명을 부르시고, 함께 먹고 걷고 울고 웃으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혼자만의 골방에서도 경험되지만, 특별히 두세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 약속되었습니다. 공동체는 단순한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계시기로 약속하신 거룩한 공간입니다. 전도서 기자도 이 비밀을 알았기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에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도서 4:9).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우고, 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추위도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진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렀습니다. 손이 발에게, 눈이 귀에게 "너는 쓸 데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5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많으나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당신이 없으면 그 몸은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다른 지체 없이는 당신 또한 온전할 수 없습니다.
혼자 피는 꽃은 없습니다. 숲은 나무들이 서로 뿌리를 얽어 바람을 견딥니다. 신앙도 그렇게 자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 혼자 신앙'의 유혹 속에 삽니다. 예배도 온라인으로, 묵상도 혼자, 기도도 개인적으로.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경고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 신앙의 성숙은 함께 짐을 지고, 함께 울고, 함께 예배할 때 비로소 깊어집니다. 오늘 당신 곁에 있는 그 형제와 자매가,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통로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혼자 있음이 좋지 않다'는 하나님의 선언 앞에서, 어떤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내가 속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는 어떤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자리가 비어 있을 때 그 몸은 무엇을 잃게 됩니까?
3. 이번 주, 내가 먼저 다가가 짐을 나누어야 할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섬김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