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9 · EP 2
하나님의 부모됨을 본받아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 땅에서 살아내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자녀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는 곳은 사전이 아니라 부모의 품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존재 방식 그 자체가 자녀에게는 첫 번째 신학(神學)이 됩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묘사할 때 여러 이름을 사용하지만, 예수님이 가장 친밀하게 부르신 호칭은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통치자가 아니라, 자녀를 품으시고 양육하시는 부모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를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시편 103편 13절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이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의 긍휼'을 비유로 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닮은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원형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이는 추상적인 신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아주는 손, 기다려주는 눈빛, 용서하는 음성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배웁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통역자입니다. 차갑고 엄격하기만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종종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자로만 인식하고,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하나님을 부재하는 분으로 느끼기 쉽습니다.
자녀의 마음에 새겨진 부모의 얼굴은, 훗날 그가 하나님을 상상하는 첫 번째 그림이 됩니다.
그렇기에 부모됨은 두렵고도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지만, 완전하신 분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주님은 부모의 한계('악할지라도')를 인정하시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사랑의 본능을 하나님 사랑의 증거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모됨은 깨어진 거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깨진 조각에도 빛은 반사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분의 마음을 닮아가려는 자세입니다.
오늘의 적용: 자녀를 야단치기 전, 잠시 멈추어 '하나님이라면 지금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를 한 번만 떠올려 보십시오. 그 한 호흡의 멈춤이 당신을 하나님의 거울로 빚어갑니다.
묵상 질문
1. 나의 자녀(혹은 주변의 어린 영혼)는 나를 통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그리고 있을까요?
2.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기억 중,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준 순간은 무엇이었습니까?
3. 오늘 내 안의 어떤 부분이 '깨진 거울'처럼 자녀에게 하나님을 왜곡하여 비추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