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8
다양한 기도의 언어들
기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어떻게 기도해야 옳은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의 형식보다 기도하는 마음을 훨씬 더 깊이 다룹니다. 한나는 입술만 움직였고, 다윗은 노래했으며, 엘리야는 산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고, 예수님은 홀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셨습니다. 각기 다른 언어였지만, 하늘은 모두 들으셨습니다.
통성기도와 침묵기도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 분 하나님을 향한 두 개의 언어입니다. 소리 내어 부르짖는 기도는 절박한 마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영혼의 외침이고, 침묵의 기도는 말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그분 앞에 잠잠히 머무는 경외의 자세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하나님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알리시기도 하고, 울부짖음 속에서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한나가 성전에서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기도할 때, 제사장 엘리는 그녀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했습니다(사무엘상 1장). 그러나 하나님은 소리 없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반대로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욱 크게 소리쳤고, 주님은 그 외침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형식이 문제였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교한 기도 매뉴얼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외식하는 기도를 경계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골방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말은 길어도 공허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짧은 탄식은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6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께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증언했습니다. 언어가 막혀도, 눈물만 흘러도, 그것 자체가 이미 기도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는 자는 믿음이 뜨겁고, 조용히 엎드리는 자는 믿음이 깊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데시벨이 아니라 진실을 들으신다.
어떤 성도는 통성기도회에 참석해야 영혼이 후련해집니다. 어떤 성도는 새벽 예배당 어둠 속에서 말없이 무릎 꿇을 때 가장 가까이 하나님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방식을 흉내 내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윗답게, 한나는 한나답게, 엘리야는 엘리야답게 기도했습니다.
오늘 당신의 기도가 형식에 눌려 멈춰 있다면, 이제는 그 틀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유창한 문장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정해진 자세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부르짖고 싶으면 부르짖고, 잠잠하고 싶으면 잠잠하십시오. 그분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사무엘상 16:7).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까지 어떤 기도의 형식에 갇혀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지 못했습니까?
2. 통성과 침묵, 둘 중 나에게 더 자연스러운 언어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라도 오늘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싶은 마음의 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