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4
타인을 위해 서는 기도
중보기도는 단순한 기도의 한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틈에 자신을 세우는 제사장적 사명이다. 내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을 부르며, 내 필요가 아닌 그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 바로 여기에 복음의 심장이 뛰고 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섰다. 그의 어깨와 가슴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이 있었다. 자기 이름이 아니라 형제의 이름을 지고 성소에 들어간 것이다. 중보기도자의 자리도 이와 같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기도의 제단에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모세는 금송아지 앞에서 진노하신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2).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더라도 백성을 살려 달라는 절규였다. 중보기도의 본질은 이처럼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셨다. 무너진 성벽을 막아서고 그 틈에 설 한 사람을.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에스겔 22:30하나님은 지금도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무너진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틈에 설 사람, 눈물로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을 찾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자리에 서셨다.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12). 십자가는 가장 완전한 중보의 자리였다.
중보기도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듯,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기도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그 사람을 가슴에 품는 것은 다르다. 참된 중보자는 타인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느끼며, 그의 구원을 자기 호흡처럼 간구한다.
내가 기도하는 그 이름이 내 가슴에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가. 기도의 분량보다, 사랑의 깊이가 먼저다.
오늘 하루, 한 사람의 이름을 품고 하나님 앞에 서 보자. 그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의 기도는 이미 제사장의 기도가 된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그 이름을 부를 때 내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흐르는가?
2. 모세처럼 "내 이름이 지워지더라도 그를 살려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한 영혼이 내게 있는가?
3. 내가 서 있어야 할 '무너진 틈'은 어디인가 - 가정, 교회, 이웃 중 하나님이 오늘 내게 맡기시는 자리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