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8 · EP 2
육신을 내려놓을 때
금식은 종종 하나님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오해된다.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영적 거래, 응답을 끌어내기 위한 강력한 무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금식의 본질은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 금식은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무너뜨리는 행위다. 음식을 끊는 외형적 행동 너머에는, 자기 의지와 자기 충족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영혼의 고백이 자리한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이가 병들었을 때 일주일을 금식하며 땅에 엎드렸다. 그는 하나님께 떼를 쓰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무력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주 앞에 자신을 낮추었을 뿐이다. 금식은 본질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이며, 내 안의 분주함과 욕망의 소리를 잠재우는 거룩한 침묵이다.
“내가 금식하며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시편 69편 10절이 말씀은 금식이 결코 화려하거나 자랑할 만한 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고 초라해 보이는, 자기를 비우는 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형식적인 금식을 신랄하게 책망했다. 머리를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어도, 마음에 압제와 다툼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금식이 아니다. 진정한 금식은 위장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비우는 것이다. 음식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 교만, 분노, 정욕, 두려움이 함께 비워져야 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장 6절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겸손한 자를 가까이하신다. 금식은 우리를 영적 거인으로 만드는 훈련이 아니라,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다시 자각하게 하는 자리다. 한 끼를 거르며 느끼는 허기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나는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금식은 하늘의 팔을 비트는 도구가 아니라, 내 무릎을 꿇게 하는 은혜다. 응답이 오기 전에 이미 나는 변화되어 있다.
오늘 한 끼를 내려놓아 보라. 그 비어 있는 시간에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로 채우지 말고, 조용히 무릎 꿇어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라. 금식의 능력은 음식을 끊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얼마나 깊이 엎드렸는가에 달려 있다.
묵상 질문
1. 나는 그동안 금식을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오지는 않았는가?
2. 음식보다 먼저 내 안에서 비워져야 할 자아의 욕망과 집착은 무엇인가?
3. 오늘 하루, 한 끼 혹은 한 가지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구체적인 시간은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