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6 · EP 9
대안 현실을 꿈꾸는 신앙
우리는 흔히 예언자를 미래의 사건을 맞히는 점쟁이처럼 오해한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자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래를 예측한 자가 아니라, 현재를 해석한 자였다. 왕궁의 화려한 잔치 뒤에 감춰진 가난한 자의 신음을 들었고, 성전의 거룩한 향연 가운데 숨겨진 위선의 악취를 맡았다. 그들의 눈은 표면을 뚫고 본질을 응시했다.
아모스가 그러했다. 북이스라엘의 경제는 호황이었고 종교는 번성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다른 풍경이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이 외침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통보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진 정의에 대한 절규였다. 예언자의 눈은 늘 '지금 여기'를 향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금'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폭로했다.
예언자의 눈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전쟁도 가뭄도 아니었다. 거짓된 평안이었다. 백성이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하다고 말하고, 병들었는데 건강하다고 외치는 그 가짜 위로가 예언자를 분노케 했다. 예레미야는 이를 정확히 짚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레미야 6:14오늘 우리의 시대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듯 보이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교회의 축복 메시지가 풍성한데, 정작 이웃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예언자의 눈은 이 균열을 본다. 그리고 대안적 현실을 상상한다. 이사야가 본 환상이 그러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그 나라,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누우며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 받지 않는 그 세상. 예언자는 그 세상을 미리 보았고, 그래서 지금의 거짓을 견딜 수 없었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고대 선지자만의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 눈을 주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분별하는 눈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고린도전서 2:14-15요한계시록 21장 5절은 그 절정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예언자의 눈은 결국 이 약속을 향한 시선이다. 무너진 현실 속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그 빛으로 오늘을 다시 읽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이 시선은 작게 시작된다. 회사의 부당한 관행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가족의 미세한 아픔을 알아채는 것, 뉴스 너머의 잊힌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예언자의 눈은 거창한 환상이 아니라, 일상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에서 자란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거짓된 평안'에 익숙해져 있는가? 무엇을 못 본 척하고 있는가?
2. 내가 속한 공동체의 표면 아래 감춰진 신음을 듣기 위해, 나의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가?
3.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은 오늘 나의 작은 선택을 어떻게 바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