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6 · EP 5
공의와 자비의 균형
정의(正義)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 것 같지만, 막상 정의하려 하면 모호하다. 어떤 이는 정의를 공정한 분배라 말하고, 어떤 이는 마땅한 처벌이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약자의 권리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것을 품으면서도 그 이상을 말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다.
인간의 정의는 대개 저울 위에서 움직인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지은 만큼 벌한다. 이는 공평해 보이지만, 그 저울은 종종 강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가난한 자의 억울함은 작게 달리고, 권세 있는 자의 이익은 크게 달린다. 그래서 선지자 아모스는 외쳤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하나님의 정의는 잠깐 흐르다 마르는 시내가 아니다. 계절을 타지 않고, 권력에 굽히지 않으며, 가장 낮은 자리까지 흘러 들어간다. 하나님의 저울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 편으로 기운다. 그것이 편파가 아니라 균형의 회복이다. 이미 기울어진 세상에서, 낮은 쪽을 들어 올리는 손이 곧 정의다.
많은 사람이 정의를 처벌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정의는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놀라운 장면을 노래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시편 85:10공의가 자비를 밀어내지 않고, 자비가 공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둘은 원수가 아니라 연인처럼 만난다. 이 신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십자가다. 죄에 대한 값은 치러졌고, 동시에 죄인은 살아났다. 로마서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그 뒤에 바로 은혜가 선언된다. 정의가 무너진 자리가 아니라, 정의가 완성된 자리에서 용서가 선포된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하시는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 6:8 참조). 정의는 차가운 판결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의 옷을 입고 걷는 삶이다.
성경의 정의는 부서진 것을 고치고, 빼앗긴 것을 돌려주며, 잃어버린 자를 제자리로 이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토색한 것을 네 배로 갚았다.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누가복음 19:9 참조) 정의의 끝은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하나님의 정의는 처벌의 칼끝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이다.
오늘 당신의 자리에서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직장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가정에서 잘못을 덮지 않고 용서로 이어 가는 것, 공동체에서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우는 것—이 모든 작은 선택들이 하나님의 강물에 합류하는 물방울이 된다.
묵상 질문
1. 나는 정의를 주로 ‘처벌’로 이해해 왔는가, ‘회복’으로 이해해 왔는가? 그 차이는 내 삶의 어떤 결정에 영향을 주는가?
2. 내 주변에서 기울어진 저울이 있다면 어디인가? 하나님의 공의가 물처럼 흐르도록 내가 감당할 작은 한 걸음은 무엇인가?
3. 공의와 자비가 입 맞춘 십자가 앞에서, 내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에게 정의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