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6 · EP 4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크리스천은 이중 국적자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이지만, 우리의 발은 이 땅을 딛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긴장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이 말씀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분리시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짓는 방향타다. 하늘의 시민이기에 땅의 문제에 무관심할 수 있다는 발상은 복음이 아니라 도피다. 어거스틴은 이를 '두 도성'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도성과 세속의 도성은 종말까지 얽혀 있으며, 성도는 그 교차로 위에서 걸어간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민에게 놀라운 편지를 보냈다. 이방 땅에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자녀를 낳으라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29:7신앙은 골방에서 시작되지만 골방에 갇히지 않는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 부르셨다(마태복음 5:13-16). 소금은 부엌 안에만 있지 않고 음식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빛은 말 아래 숨지 않고 등경 위에 올려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적 신앙이다. 투표장에서, 직장 회의에서, 이웃 분쟁에서, 공공의 윤리 앞에서 크리스천은 침묵의 구경꾼이 아니라 의(義)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궁에서,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보여준 삶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더 탁월한 시민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만이 땅을 바르게 경작할 수 있다. 영원을 아는 자만이 오늘을 책임 있게 살아낼 수 있다.
우리는 순례자다. 그러나 무책임한 방랑자가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조상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 11:13나그네이지만, 그들은 도망자가 아니었다. 미가 선지자의 말씀은 오늘도 유효하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정의·인자·겸손, 이 세 가지는 공적 영역에서 크리스천을 알아보게 하는 표지다.
오늘 당신이 선 자리 — 가정, 직장, 학교, 공동체 — 가 바로 당신의 '바벨론'이고, 동시에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전선이다. 그곳에서 평안을 구하며,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이 하늘 시민의 땅 위 걸음이다.
묵상 질문
1. 나는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만 가두어 두고, 공적 영역에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2.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바벨론'은 어디이며, 그곳의 평안을 위해 나는 어떤 기도와 수고를 드리고 있는가?
3. 소금과 빛으로서 이번 주에 내가 구체적으로 감당할 한 가지 책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