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5 · EP 6
눈물의 은혜
우리는 슬픔을 빨리 떨쳐내야 할 감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눈물이 흐르면 부끄러워하고, 마음이 무너지면 감추기 바쁘다. 그러나 성경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의 한복판에 서 계신 하나님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전능하신 분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은, 슬픔이 결코 불신앙의 증거가 아님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이지만, 가장 깊은 위로가 담긴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눈물 하나하나를 병에 담으신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슬픔을 억누르는 것은 경건이 아니다. 슬픔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것이 참된 경건이다.
치유는 슬픔을 건너뛰는 데서 오지 않는다. 충분히 슬퍼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일어설 수 있다. 욥은 친구들 앞에서 일곱 날 밤낮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의 시간은 회피가 아니라 애도의 시간이었다. 다윗은 시편에서 끊임없이 탄식했다. 그의 기도는 정돈된 신앙고백이 아니라 찢어진 마음의 외침이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하나님은 멀쩡한 마음보다 상한 마음을 더 가까이하신다. 슬픔의 문 앞에 서 있다면, 억지로 문을 닫지 말라. 그 문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은혜가 있다. 전도서 기자는 "슬퍼하는 것이 웃는 것보다 나으니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전도서 7:3)고 말했다. 슬픔은 영혼을 정제하는 불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셨다.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말씀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위로는 슬픔을 피한 자가 아니라 슬픔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진다. 로마서 8장 28절이 말하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 '모든 것'에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포함된다. 오늘 당신의 눈물은 내일의 간증이 될 것이다.
슬픔을 빨리 극복하려 하지 말라.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당신의 마음이 다 쏟아질 때까지 곁에 앉아 계신다.
묵상 질문
1. 나는 최근 어떤 슬픔을 억누르거나 외면하고 있는가? 그 슬픔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꺼내 놓는다면 무엇이라 말하고 싶은가?
2.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예수님의 모습은 나의 슬픔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가?
3. 충분히 슬퍼한 뒤에 하나님이 주실 위로를 기대하며,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조급함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