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4 · EP 9
용서받은 자의 헌신
갈릴리 호숫가의 작은 마을 막달라.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누가복음은 그녀를 이렇게 소개한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누가복음 8:2성경은 그녀의 과거를 단 한 줄로 증언한다. 일곱 귀신. 숫자 7은 성경에서 완전수다. 완전한 어둠, 완전한 사로잡힘, 완전한 절망을 뜻한다. 하나의 귀신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일곱이라니. 그녀의 영혼은 얼마나 찢겨 있었을까. 낮에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밤에는 자기 자신이 두려운 존재가 되어, 마을 어귀를 배회하며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일곱 귀신은 비단 고대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일곱 겹의 어둠이 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 지워지지 않는 수치, 끊어지지 않는 중독, 다스려지지 않는 분노, 치유되지 않는 상처, 용서되지 않는 원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추느라 지친 거짓 자아. 마리아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
마리아는 자기 힘으로 한 귀신도 쫓아낼 수 없었다. 의지를 다지고 결심을 새롭게 해도, 어둠은 더 깊은 어둠을 불렀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사도 바울도 같은 절망을 토로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시편 기자는 이 무력함의 바닥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구원은 몸부림의 끝에서 오지 않는다. 몸부림을 멈추고 그분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마리아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힘도, 스스로를 붙들 힘도 없는 자리. 바로 그때, 예수님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복음 7:47). 뒤집어 말하면, 많이 용서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게 된다. 마리아가 훗날 십자가 아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안식 후 첫날 새벽 가장 먼저 무덤을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의 사랑의 깊이는 그녀의 절망의 깊이와 정비례했다.
절망의 밑바닥은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은혜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넓은 문이다.
오늘 당신의 일곱 귀신은 무엇인가. 숨기고 싶은 그 자리를 예수님 앞에 내어드리는 순간,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
묵상 질문
1. 내 삶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쫓아낼 수 없었던 '일곱 귀신'은 무엇인가? 가장 깊은 어둠의 이름을 솔직히 불러본다면?
2. 나는 몸부림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 하나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무엇이 그 고요함을 방해하는가?
3.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 앞에서, 나의 사랑이 얕다면 그것은 내 용서받음에 대한 자각이 얕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