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4 · EP 4
고난 앞에 선 인간
우스 땅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욥이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기 1:1). 이보다 더 완벽한 인물 소개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도 사탄 앞에서 그를 자랑하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기 1:8).
그런데 바로 그 욥에게 재앙이 쏟아졌다. 하루 사이에 자녀 열 명이 몰살당했고, 모든 재산을 잃었으며,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다. 의인이기에 보호받은 것이 아니라, 의인이기에 고난의 한복판에 세워졌다. 이것이 욥기가 던지는 첫 번째 충격이다.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왔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네가 고난당하는 것을 보니 네 안에 숨은 죄가 있을 것이다. 회개하라." 이것이 우리의 본능적 신앙 논리다. 잘되면 복받은 것이요, 안 되면 벌받은 것. 그러나 하나님은 이 단순한 인과율을 깨뜨리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3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두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인과응보의 프레임 자체를 부수는 것이었다. 욥의 고난도 그랬다.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늘 법정에서 벌어진 보이지 않는 싸움의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던 것이다.
욥은 묻고 또 물었다. "왜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다. 사탄의 존재도, 하늘의 내기도 욥은 죽을 때까지 몰랐다. 대신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서 자신을 보여주셨다. 욥은 그제야 입을 막았다. 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답을 주시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사도 바울도 이 신비를 알았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모든 것'에는 고난도 포함된다. 우리 눈에 악으로 보이는 것조차 선의 재료가 된다.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셨다. 대신 자신을 보여주셨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 당신에게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있는가. 이유를 찾지 못한 눈물이 있는가. 시편 기자의 고백을 붙잡으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때로 신앙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어도 그분을 신뢰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는 고난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욥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원망하고 있는가?
2. 나의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인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는 관계'인가? 사탄의 첫 질문("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은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3. 답이 없는 고난 속에서 '답을 주시는 분'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그 만남은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