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2 · EP 8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 우리는 문득 두려운 질문 앞에 선다. "기계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가?" 생산성, 지능, 효율성 — 지금까지 우리가 인간됨의 증표라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기계에게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인간의 존엄을 선언한다. 존엄은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온다.
창조의 여섯째 날,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먼저 선언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주목할 것은 순서다. 하나님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시고 형상을 수여하지 않으셨다. 첫 인간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업적도 쌓지 못했다. 말을 배우기 전에, 땅을 경작하기 전에, 이름을 짓기 전에 — 그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형상은 성취의 보상이 아니라 창조의 출발선이다.
이것이 로봇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복음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가 등장해도, 아무리 뛰어난 지능체가 나타나도, 그것은 형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실리콘에 자신의 형상을 새기지 않으셨다. 오직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코에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시편 기자는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하면서도 그 존엄을 노래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4-5이 관은 씌워진 것이지 쟁취한 것이 아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 의식이 없는 환자, 태중의 작은 생명, 장애로 평생 노동하지 못하는 이 — 세상은 이들을 '비효율'이라 부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면류관은 조금도 기울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 진실을 몸소 확증하셨다. 그분은 가장 무력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무력한 십자가의 모습으로 인간의 존엄을 껴안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으시고, 당신이 누구인가를 선언하신다.
로봇 시대의 가장 큰 유혹은 '쓸모의 논리'다. 생산성이 없으면 가치가 없고, 효율이 떨어지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차가운 계산법. 그러나 바울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전서 1:27또한 바울은 우리 자신의 한계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능력의 근원이 내 안에 있지 않기에, 내 능력이 줄어도 내 존엄은 줄지 않는다. 로마서 8장 28절이 말하듯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가치는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오늘 당신이 어떤 일에 실패했든, 어떤 능력을 잃었든, 기계에게 자리를 빼앗겼든 — 그 사실이 당신의 존엄을 깎지 못한다. 형상은 새겨진 것이고, 새긴 분이 지우지 않으시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까지 나의 존엄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측정해 왔는가, 아니면 '누구의 형상인가'로 바라보아 왔는가?
2. 로봇과 AI가 나의 일을 대체할 때 밀려오는 두려움의 뿌리에는 어떤 거짓 신념이 숨어 있는가?
3. 내 곁에 있는 '쓸모없다' 여겨지는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본다면, 오늘 나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