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2 · EP 4
숫자 너머의 인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혈압과 체중, 연봉과 신용점수, 팔로워 수와 조회수, 학점과 토익점수. 현대인의 하루는 끊임없이 측정되고, 기록되고, 비교된다. 스마트워치는 잠든 시간까지 수면의 질을 점수로 환산하고, 앱은 걸음 수와 심박수를 그래프로 그려낸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들은 좀처럼 숫자가 되어주지 않는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을 때의 온도, 친구가 건네는 위로의 무게, 용서할 때 가슴 안에서 무너지는 단단한 벽, 은혜 앞에 엎드릴 때의 눈물. 이 모든 것은 어떤 계량기로도 담기지 않는다. 빅데이터는 우리의 소비 패턴은 알지만, 우리가 왜 그 밤에 무릎을 꿇고 울었는지는 모른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막내를 택하셨다. 키와 용모라는 '측정 가능한 지표'는 사무엘의 눈을 흐렸지만, 하나님은 데이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중심을 보셨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을 숫자로 환원하려는 세상의 문법을 거부한다.
다윗은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이 한 문장에는 어떤 통계도 담지 못한 평안이 있다. '부족함이 없다'는 선언은 자산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충만함이다. 바울 역시 감옥이라는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말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세상의 지표로는 결박당한 죄수였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 그는 자유인이었다.
예수께서도 성전에서 부자들의 큰 헌금이 아니라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다(마가복음 12:41-44). 헌금함의 금액은 부자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보이지 않는 중심의 전부를 보셨다. 하나님 나라의 회계는 세상의 회계와 다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이처럼'이라는 단어에는 측정이 없다. 사랑의 크기를 숫자로 적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로마서 8장 28절의 약속—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도 알고리즘이 아니라 섭리의 언어다.
오늘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숫자'는 무엇인가. 그 숫자는 당신을 정의할 자격이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의 중심을 바라보실 때, 그분의 눈에 담긴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
오늘 하루, 숫자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자. 체중계 대신 성경을 먼저 펼치고, SNS 알림 대신 기도의 조용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자. 측정되지 않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진짜 삶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데이터의 감옥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묵상 질문
1. 나는 오늘 어떤 숫자로 나 자신을 판단하고 있는가? 그 숫자가 하나님이 보시는 나의 진짜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2. 내 삶에서 측정되지는 않지만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3. 사무엘이 외모에 속았던 것처럼, 나는 어떤 '데이터'에 속아 사람이나 자신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