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G01 · EP 3
죽음 이후의 세계
우리는 누구나 죽음 앞에 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끝'이라 여기며 외면한다. 의학은 죽음을 실패로, 철학은 허무로, 문화는 금기어로 다룬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한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옮겨감이며,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본향을 향한 출발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육체에 갇혀 있지 않다.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 때, 영혼은 자신을 지으신 이에게로 돌아간다. 이것은 단절이 아니라 귀환이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7절전도자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실재로 제시한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을 통과한 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영은 주신 이에게로 돌아간다. 이 한 절 속에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답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장 43절죽음 이후는 불확실성의 안개가 아니라 약속의 영역이다. 주님은 "아마도" "혹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늘" "함께" "낙원"이라는 세 단어로 사후 세계를 확정하셨다. 성경은 죽음 너머에 대해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듣지 않을 뿐이다.
죽음은 촛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동이 트면서 등불을 끄는 것과 같다.
죽음이 본향으로 향하는 문이라면, 오늘의 삶은 순례의 여정이다. 이 관점은 우리의 하루를 바꾼다. 세상의 성공과 소유가 전부라 여기며 움켜쥐던 손이 펴진다. 지나가는 것에 덜 붙잡히고, 영원한 것에 더 투자하게 된다.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더 이상 미뤄지지 않는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생긴다. 본향을 아는 자는 오늘을 낭비하지 않는다.
죽음을 바로 볼 때 삶이 바로 선다. 두려움 대신 소망이, 허무 대신 방향이 자리 잡는다.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는 그 문 너머에, 당신을 지으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까지 죽음을 어떤 이미지로 그려 왔는가? 그 이미지는 성경이 말하는 죽음과 어떻게 다른가?
2.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오늘 나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3. 본향을 향한 순례자로서, 오늘 내가 미뤄서는 안 될 사랑과 화해의 행동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