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1 · EP 9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선다. 아무도 이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인은 죽음을 외면하고, 병원 뒤편으로 밀어 넣고, 화제에서 지운다. 죽음을 잊어야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을 외면하는 자는 삶도 외면하게 된다. 죽음의 문 앞에 정직하게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한다.
성경은 죽음의 기원을 분명히 밝힌다.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없던 것이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단절의 흔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이 맞이하는 필연적 결과다. 그러므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실존 상태를 바라보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2절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예수님은 이 문을 먼저 통과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그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선언한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죽음의 권세를 이미 깨뜨린 자의 선언이었다. 우리가 죽음의 문 앞에 설 때, 그 문 너머에 예수께서 서 계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을 묵상한다는 것은 염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솔직한 신앙의 출발이다.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된다. 오늘 내가 나누는 말 한마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 — 이 모든 것이 영원한 무게를 가지게 된다. 실제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이렇게 물어보라. "만약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이 당신의 하루를 바꾸고, 결국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죽음의 문 앞에 서는 자만이 진정한 생명을 살 수 있다.
묵상 질문
1. 나는 평소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온 순간들이 있다면, 그것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함께 잃어버리게 만들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라.
2. 죽음이 '벽'이 아니라 '문'이라는 고백 앞에서, 나는 그 문 너머에 서 계신 예수님을 실제로 신뢰하고 있는가? 내 신앙 고백과 실제 삶의 두려움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가?
3.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 중 영원한 무게를 가진 것은 무엇이며,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