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 시즌 2 · ONETHING · EP 8
나는 죽고 예수로 — 닮아가나 하나님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자녀로 태어난 자는 자라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자람의 방식이 뜻밖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역설이 자녀가 자라는 길이며, 3권에서 본 그 판단하는 자가 다루어지는 길이다.
여기서 죽는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참 자아가 아니다. 죽는 것은 하나님같이 되려던 옛 자아, 곧 3권에서 본 그 판단하는 자다. 쉼 없이 남을 정죄하고 비교하며, 스스로 선악의 재판관 노릇을 하던 그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가 죽어야 참 자아가 산다. 이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짓누르던 그 재판관을 내려놓는 해방이다.
그리고 판단하는 자가 죽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정죄가 그친다. 그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끊임없이 남을 정죄하고, 그 정죄가 부메랑이 되어 나 자신도 정죄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그 재판정이 문을 닫는다. 나는 더 이상 재판관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재판은 이미 끝났고, 참된 재판장이 따로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이 판단하는 자가 죽은 자리에 흐르는 은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모든 정죄를 다 담당하셨기에, 이제 나를 정죄하는 법정은 문을 닫았다. 나는 정죄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도 나를 변호하려 남을 정죄할 필요가 없다. 정죄의 연료가 끊긴 것이다.
보라, 남을 판단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대개 자기를 지키려는 불안이 있다. 남을 아래로 깎아내려 나를 위로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이미 정죄받지 않는 자녀임을 알면, 그 불안이 사라진다. 나를 세우려 남을 깎을 필요가 없어진다. 판단하는 자가 죽고 정죄가 그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반응이 자라기 시작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그 새로운 자아가 무엇으로 자라 가는지를 본다.
본향 한 걸음
비유로 보기 — 재판관이 자리를 뜨면 그 법정은 문을 닫는다. 판단하는 자가 죽으면 정죄가 그친다.
마음에 새기기 — "나는 이미 정죄받지 않는 자녀이니, 나를 세우려 남을 깎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보라.
응답 — 오늘 누군가를 정죄하려는 마음이 올라오거든,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그 은혜를 떠올려 그 재판을 멈춰 보라.
여기까지가 미리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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